김명규/(사)새로운건축사협의회 건축도시발언위원회 간사
기고
서울시는 잔디광장을 앞에 둔 시청 본관 뒤편에 새 청사 신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매머드급의 신축 청사 건설 설계안을 확정하였다. 봄소식과 함께 시원함을 제공하였던 탁 트인 뒷마당의 상춘객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새 청사 건립은 서울시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도시 경쟁력이 곧 나라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 된다는 지역·세계화(글로컬라이제이션) 시대를 맞아 서울이 세계 속의 도시로서 우뚝 선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 까닭이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한국의 대표도시이자 아시아의 중심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에 걸맞은 규모를 내세우는 단순한 등식논리가 새 청사 건립계획에 깔려 있다. 그런데 문화재로 지정된 덕수궁과 근대문화 유산인 시청 본관이 장애로 작용한다. 궁여지책으로 택한 방법이 덕수궁의 경계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 90m 높이의 새 청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덕수궁이 한스럽고 청사 본관이 눈엣가시일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을 역사도시로 일컫는다. 조선왕조가 개국하여 한양에 도읍한 지 600년이 훨씬 지나기도 했지만,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며 이제는 흔적만이 위태롭게 남은 성곽 따라걷기를 기획하거나, 광화문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야 한다거나, 개발우위 시대에서 편리와 효율을 위해 저질렀던 잘못들을 고쳐 역사도시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중요한 도시관리 정책이다. 그런데 왜 새 청사 건립에는 이런 철학을 담지 못할까. 숨 가쁜 경주에서 짐짓 여유를 가지는 셈치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서울만의 고유한 청사 건립 방법을 고민하자. 역사도시의 고즈넉함과 풍요를 간직한 채 활력이 넘치는 현대도시로서 서울을 드러내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서울시 스스로 검토해 보았던 것처럼 근대문화 유산인 시청 본관은 시장 집무실 등 상징적인 공간만을 둔 채 서울 시정역사관이나 기념품 판매점이 있는 외국인 관광센터로 쓰고, 탁 트인 뒷마당의 한쪽은 기왕 운행하기로 한 청계천 투어버스의 출발지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사무는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마치 반지모양으로 큰 원을 그리며 곳곳에 흩어지도록 해서 모든 업무가 온라인상에서 처리되는 종이 없는 시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각의 사무공간을 잇는 길은 보행자 전용녹도를 만들어 서울의 역사적 흔적을 완상하는 걷고 싶은 길로 꾸미는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과 서울시장이 함께 열린 공간을 즐기고, 마치 이들을 보호하기라도 하듯이 빙 둘러선 채 서울시의 업무가 이루어진다면 정보통신 강국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동시에 세계 대도시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청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 호평 속에서도 여전히 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추진방법의 졸속성에 있다는 지적을 깊이 새겨듣자. 새 청사 역시 지금의 방법과 일정대로 꾸려진다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은 분명하다. 한쪽에서는 자연자원 복원과 문화적 쉼터 마련이라는 깃발 아래 청계천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개발시대의 방법으로 터널을 뚫고 구릉을 헐어내는 식이라면 과거 실패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무시하고 새로운 시대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까.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걸맞은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새 청사 건립은 마땅히 재고해야 한다.
김명규/(사)새로운건축사협의회 건축도시발언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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