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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7 20:05 수정 : 2005.02.17 20:05

국제정치학 교과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기초 개념의 하나에 ‘안전보장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1950년대 중반 미-소 냉전 시절 핵군비 경쟁이 극에 달했을 때 등장한 용어지만 국제정치의 영원한 과제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안전보장의 역설’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듯하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취한 군사력 증강이라는 조처가 상대방의 군비 강화라는 대항조처를 유발해서 결과적으로 자국의 안전이 이전보다 더욱 위협받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상호 신뢰가 없고 불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군사력 증강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군사력 증강이 초래할 군비확대 경쟁은 긴장을 격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국가적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외국의 침략에 시달리고 미-소 냉전에서도 상대적으로 약한 쪽에 있었던 소련은 이같은 안전보장 딜레마를 가장 고통스럽게 경험한 나라의 하나였다.

“군사력 증강은 ‘소련 위협론’이라는 신화를 강화시킬 뿐이지 소련의 안전보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외부세계에 대해 소련의 평화적 의도와 계획을 확신시키고, 미국 내 보수 반동세력을 고립시키는 길은 우리의 ‘개방성’밖에 없다. 대내외 정책에서의 개방성의 확대는 소련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 지름길이다.”

88년 소련 내부에서 안전보장 전략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논쟁 과정에서 작성된 개혁파의 문서들이다. 전통적으로 군사력 강화를 금과옥조로 지켜온 소련의 안전보장 전략에서 보면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냉전기의 ‘상호억지’에 의한 ‘공포의 균형’에서 신뢰양성조치(CBMs) 등을 통한 ‘상호 안심’으로의 전환을 제창한 전유럽 안전보장회의(CSCE)의 ‘공통의 안전보장’이라는 새로운 발상의 영향이 여실히 나타난다.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 체제의 재생을 꾀한 고르바초프 개혁파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경제개혁보다 정치개혁을 서둘러 혼란을 일으킨 점, 대외관계는 극적으로 개선돼 내부개혁의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기대했던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이 늦어진 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레이건에 이은 부시 정권내의 강경파들은 고르바초프 개혁에 대한 지원을 늦춤으로써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와 붕괴를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소련 개혁파의 실패가 북한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움츠러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북한 안에서도 부시 정권의 강경정책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유사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후반 레이건 정권에서 대소 강경정책을 추진한 담당자들의 상당수가 네오콘들로서 현 부시 정권에서도 안전보장 정책의 축을 이루고 있다.

북한의 갑작스런 핵보유 선언은 기본적으로는 고립과 위기의식의 산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핵보유 선언으로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것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핵보유가 북한 체제의 장기적 생존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내에 안전보장 딜레마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안심감 속에서 발상 전환을 통한 ‘신외교’ 노선이 더 대두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다행히 핵보유 선언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강경대응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 자체의 군사적 수단의 한계, 한·중·러 등 지역내 나라들의 외교적 점진적 해결에 대한 공통인식이 그 요인이다. 6자 회담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상호안심’을 제공하는 유기적인 외교를 통해서 북한의 정책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종원/일본 릿쿄대학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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