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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왜 ‘이란 핵’을 주시하는가? / 권용립

등록 2006-04-25 18:30수정 2006-04-26 10:50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북한에 이어 핵 문제로 미국과 대치하게 된 또 하나의 나라 이란은 시아파의 나라다. 7세기 말 이슬람은 칼리프 야지드를 추종하는 수니파와 마호메트(무함마드)의 사위 겸 조카인 알리의 아들 후세인을 추종하는 시아파로 분열되는데, 카르발라에서 후세인이 야지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면서 시아파는 ‘카르발라의 순교’를 철천지원으로 품게 된다. 그 이후 시아파의 모든 적은 후세인을 죽인 ‘야지드’이며 적과의 대결은 모두 ‘카르발라의 복수’다. 시아파가 전투적 순교를 유독 찬양하는 역사적 배경은 이것이다. 또 시아파는 후세인의 자손만을 반신적 존재인 ‘이맘’으로 부르는데, 874년 제12대 이맘이 다섯 살의 나이로 홀연히 종적을 감춘 이후부터는 이맘이 악의 무리를 무찌르기 위해 반드시 세상에 다시 온다는 묵시록적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이런 전투적 순교관과 묵시록적 신념에 투철하다. 1980년 9월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는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에 이르는 소년병을 모아 몇 주간의 교리 교육과 군사훈련만 시킨 후 지뢰 제거부대로 전선에 투입했다. 이라크 군을 공격할 최정예 정규군인 이란 혁명수비대의 공격 루트를 터주기 위해서였다.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목에는 대만에서 수입한 천국행 플라스틱 열쇠를 하나씩 건 소년 자살 부대는 ‘카르발라의 복수’를 외치면서 대오를 지어 지뢰밭으로 행진해갔다. 이것이 ‘바시지’다. 원래 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직후 대중운동으로 시작되었다가 민병 조직으로 바뀌어 전투에 투입된 것이다.

아마디네자드는 바로 이 바시지 교관 출신이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의 인터뷰에서도 “순교자의 죽음보다 아름답고 신성하고 더 영원한 예술은 없다”고 했으며, 지난해 9월 그의 첫 유엔 연설도 제12대 이맘의 재림을 기원하는 말로 끝맺은 인물이다. 80년대 초 한국의 386 세대가 ‘광주’에 분노하며 저항과 민주를 꿈꿀 때 이란의 바시지 세대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복수와 순교를 꿈꾸었던 것이다. 아마디네자드의 대통령 당선은 이 바시지 세대가 이란의 새 권력 중추로 대두하면서 30년 전에 시작된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중흥기를 맞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투적 순교가 최고의 정치적 미덕인 이란을 미국이 공격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문제가 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 가능성이 별로 없다. 80년대의 바시지는 막대기 하나만 들고 전쟁터에서 순교했지만 21세기의 바시지는 핵 연료봉을 들고 실험실에서 순교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이미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오는 28일까지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이란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제평화를 위해 무력 사용을 허용한 유엔헌장 제7조에 따른 결의안을 안보리가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라크만으로도 이미 벅찬 미국이 이라크와는 사정이 또 다른 이란까지 공격하기가 쉽지는 않다. 중국과 러시아도 걸림돌이지만, 이란에 미국은 21세기의 ‘야지드’이며 미국의 공격은 ‘카르발라의 복수’를 시작할 신호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 이후의 이란과 북한은 ‘절대 안보의 확보’라는 미국 세계전략의 최우선 고리에 함께 묶여 있다. 특히 미국은 이란 문제의 해결 방식이 북한을 ‘학습시킬’ 가능성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워싱턴의 강박증이 이맘의 재림과 카르발라의 복수를 꿈꾸는 테헤란의 전의와 과연 어떻게 충돌하게 될지 주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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