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아침햇발
소원한 대학 동기생들 사이에서 돈을 걷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한해 한두 번쯤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너, 30만원쯤 내야 되겠다”고 한다. 내가 “계좌번호 알려주면 오늘 밤 안에 보내마”라고 선선히 답했더니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너,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내가 요즘 며칠 동안 사람들한테 돈 좀 내라고 전화하다가 아주 인생관이 바뀌어버렸다. 술 마시는 자리에는 그렇게 많이 나오던 사람들이 돈 좀 내라니까 선선히 내겠다는 놈이 없는 거야. 너는 그동안 거의 만나지도 않고 살았으면서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다. “운동권은 본래 돈 내는 데 익숙하거든. 학교 다닐 때는 화염병값 서로 보태주고, 수배된 친구들 밥값 모아서 보내주고, 사회에 나와서는 해고된 동료들 생활비 보태주고…. 매달 돈 보내는 데가 지금도 아마 열 군데쯤은 될 거다. 그게 다 푼돈이지만….” 말끝에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 미국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거 아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사회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미국식 극단적 개인주의의 폐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미국은 우리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나라다. ‘부자들의 천국’ 미국에도 시민사회에는 ‘기부문화’가 자리잡혀 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권단체에 돈도 내고 자원봉사 활동도 하며 사는 것이 상식적인 삶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저급한 인간 취급을 당하는 정서가 있다. 어릴 때부터 일등을 놓치지 않은 우리의 똑똑한 수재들이 헌혈이나 자원봉사 경력이 전혀 없어서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오해할까봐 걱정되는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그 정도이니 다른 나라들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노동상담 일을 오랜 세월 해온 공인노무사가 “요즘 노동상담하러 찾아오는 직장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 표정이나 눈빛이 섬뜩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로 조기퇴직과 고용불안이 발생하고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직장인들의 마음가짐이 ‘내가 언제 명퇴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할지 모르니까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안 회사에서 최대한 뽑아내자.’ 점차 그렇게 바뀌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원칙에 어긋남에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 열심히 추구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동기생들보다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며 가슴 아파 해본 적이 없다면,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면서 2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가 뵙지 못했어요. 휴가 하루라도 신청하면 내년에 재계약 안 될까봐….” 그렇게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 때문에 가슴 아파 해본 적이 없다면, 제발 열등감이라도 좀 느끼며 살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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