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경제전망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임하는 정부의 공식 태도는 협상을 하면서 주판을 튀겨보다가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인 협상 조건을 따지기보다는 신속히 협상을 타결하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이런 소문은 꼭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협정을 추진하고 지지하는 그룹 안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자유무역협정,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히 통상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정치·군사적 문제를 포함하는 대단히 전략적인 판단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간추리면,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중국의 38선인가’ 아니면 ‘미국의 압록강인가’의 양자택일 구도 속에 빠져들고 있고, 한국의 대외전략은 동북아 중심에서 한-미 동맹 중심으로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또한 객관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전략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거나 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논의에는, 북-중 관계의 강화가 한반도 통일에 매우 불리한 사태 전개라는 판단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한국판 중국 위협론)
그러나 북-중 경제관계의 확대로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이 되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무역 의존도는 1990년 29.8%에서 2004년에는 69.8%로 늘었다. 그리고 계속된 고도성장과 외자 유입으로 자원 부족과 자금 과잉 기조가 심화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제한적이지만 2002년 7·1 조치 이후로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 핵 문제로 중국 이외의 나라와의 관계 발전이 제한된 것을 감안하면, 두 나라 무역액이 남북한 사이 무역액을 넘어선 것이 특별히 부자연스런 상황은 아니다.
좀더 거시적으로, 미국에서는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파악하는 흐름이 있지만, 당분간 중국이 선두에 도전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중국의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 북한의 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이 큰 것은 북한 무역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유은행은 성장을 위한 자금을 공급해 왔으나, 이제 과잉투자와 거품성장 때문에 긴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원과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는 문제도 심각하고, 석유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빈부격차, 지역격차, 환경 및 질병, 물 부족, 비민주적 정치제도 등도 계속 회피할 수는 없는 문제다.
한편, 미국의 지위도 점점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2005년에만 8050억달러에 이르렀으며, 1달러의 상품을 수입하고는 53센트어치만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벌어들이는 것 이상으로 소비하려면 막대한 빚을 져야 한다. 폴 크루그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쁘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무역적자로 대가를 치를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뉴욕타임스〉 4월25일치)
미국은 약해지고 있고, 중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변화와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굳이 정답을 구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돌연히 거대한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설명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현정부가 거대한 전략 변경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실현될 수도 있고, 정부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를 위해, 협상은 협상일 뿐이라는 태도를 꼭 지켜가길 바란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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