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세상읽기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왜 그렇게 꼬였어?”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구인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섰고 정당들도 꼼짝없이 따라가는데, 네가 트집 잡으면 되겠냐?” 이런 말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우리말로 ‘참공약 선택하기’라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어째 우려스럽다. 이 운동은 ‘이미지 정치’와 ‘네거티브 전략’의 대안이라고 한다.
요즘 여러 곳에서 동네북이 된 이미지 정치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미지가 좋다는 것이 곧 실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금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보랏빛 스카프라고 해서 유권자가 강금실을 찍는 것이 보랏빛 스카프가 좋아서이겠는가? 유권자들은 그가 법무부 장관이라는 공인으로 살아온 시절의 처신과 업적을 알고 있다.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주는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후보자의 그간의 행적에 따라 형성된다. 맹형규, 홍준표 후보가 탈락한 것은 ‘준비된 콘텐츠’가 ‘근거 없는 이미지’에 밀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구태의연한 정치인 이미지를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지란 때로 실제 내용과는 다르게 덧칠이 되는 수가 있다는 점은 늘 조심할 일이다.
네거티브 전략이나 폭로전이 지양되어야 할 구태라는 점은 인정한다. 사실이 아닌 흑색선전은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피해 당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안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말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총선 때 시민사회 단체의 낙천낙선 운동도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인 선거행태로 그려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이번 지방선거는 정책선거로 치르자고 주장한다. 정책선거 하자는 데 반대할 뜻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지향하는 ‘정책선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에서는 선뜻 동의가 안 된다. 매니페스토란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 선거공약이라고 한다. 기존의 정책공약과는 달리 검증이나 평가가 가능하도록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 시기와 방법, 그리고 재원조달 방안까지를 내놓는 방식이다. 이 운동에 나선 시민단체와 언론은 공약에 대한 평가기준을 제시하였으며, 이 기준에 따라 이미 특정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 67점이니 72점이니 하는 점수를 매기기도 하였다.
이런 정책평가의 치명적인 결함은 ‘구체성’을 정책기획의 우수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의 방향성, 곧, 이 후보자가 당선되면 어떤 쪽으로 지역의 모습을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보자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갈 때 우려되는 폐해는 두 가지다. 첫째, 이러한 경쟁방식은 기득권을 가진 정치 집단에 유리하다. 구체적인 목표수치나 재원조달 방안까지 제시하려면 지방정부의 내부사정에 정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당의 후보가 유리할 것이며,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둘째, 유권자는 개별 공약에 대해서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점수를 매길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면 평가점수를 제시해주는 시민단체나 언론의 지침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말이 좋아 정책평가지 잘못하면 보수언론이 누구를 찍을지 점수로 정해주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놓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다만, 정책의 ‘방향성’은 더 중요한 가치인데도 점수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간과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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