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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개인의 기업화 / 정석구

등록 2006-05-02 19:49

정석구 기자
정석구 기자
아침햇발
지난해 이맘때, 대구에 사는 한 친구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인터넷 홈쇼핑몰을 만들었으니 한번 들어와 보라는 것이다. 시골 출신으로 거의 컴맹 수준에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사이버상에 쇼핑몰을 내다니. 기대반 걱정반으로 들여다본 쇼핑몰은 건강용품이나 생활가전용품 등 300가지가 넘는 상품들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1년 남짓 지난 지금, 그는 소규모 홈쇼핑몰 중 50위권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대형 홈쇼핑몰에 물건을 공급하거나 직접 팔았던 그 친구가 인터넷 쇼핑몰을 열게 된 것은 시장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의 발달로 손님들의 발길이 사이버상으로 옮겨가는데다, 주변에서도 잇따라 쇼핑몰을 개설하는 추세여서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라는 흐름을 타지 않고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올봄 한의과 대학을 졸업한 이아무개씨는 요즘 개업 문제로 고민 중이다. 예전 같으면 주택가 주변에 상가 한 칸 빌려, 소파 몇 개 들여놓고 약재함 정도만 갖추면 그런대로 문은 열 수 있었다. 한의원이니 특별한 전공분야를 내걸 필요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런 시절은 가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한의원이 함소아, 박달나무, 코비, 도원아이 등과 같은 공동상호를 쓰면서 그물을 엮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결국 ‘할아버지 한의원’이란 이름을 쓰는 한의원을 열기로 했다.

개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런 흐름은 이제 우리의 일상사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경영혁신을 이룰 것인지 등은 주로 기업들의 몫이었다. 변화와 혁신도 대부분 기업 단위로 이뤄졌다. 개인들은 그런 기업의 우산 아래 안주했다.

이제는 변화의 물결이 기업이나 공공조직 등과 같은 완충장치 없이 곧바로 개인에게 밀어닥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식 정보화 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면서 개개인들도 기업과 같이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른바 개인의 기업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개인이 기업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속성이 개인의 삶에 녹아든다는 말이다.

개인의 기업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개인들도 기업처럼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빠져들게 한다. 홈쇼핑몰을 하는 친구는 “이전에 직접 물건을 들고 다니며 팔 때는 마진이 괜찮았는데, 이제는 온라인에 모든 게 공개되다 보니 가격경쟁이 치열해 이윤율이 아주 낮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는 소득 양극화도 개인의 기업화 현상으로 말미암은 측면이 적잖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개인과 흐름에서 벗어난 개인들의 소득 격차는 전날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임금 소득보다 자영업 소득이 양극화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면 개인들이 스스로 (마치 기업처럼)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감지하고, 능동적으로 혁신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 교육이나 기술 수준 등의 제약 때문에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개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개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할 것이다.

개인의 기업화 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지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업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들이 제대로 된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부의 미시적인 지원체계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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