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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똥꾼과 왕의 손을 잡은 부처님 / 오현

등록 2006-05-04 21:41

오현 /스님·설악산 백담사 회주
오현 /스님·설악산 백담사 회주
기고
부처님이 어느 날 사위성으로 외출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좁은 골목길에서 분뇨를 수거하는 똥꾼 니다이를 만났다. 그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길을 비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지고 있던 똥통이 쏟아지면서 부처님에게 똥물이 튀었다. 그는 놀랍고 송구스러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니다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다. 나와 함께 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자. 냄새가 너무 심하구나.”

“부처님은 왕의 아들이지만, 저는 천한 똥꾼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고귀한 분과 같이 목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나의 가르침은 맑은 물과 같아서 온갖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니다이는 부처님과 함께 갠지스강에 가서 목욕을 한 뒤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파세나디 왕은 불만을 토로했다.

“부처님은 왕족이시다. 귀한 신분이 어찌 불가촉천민을 제자로 삼고, 귀한 신분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공양하도록 했단 말인가.”

그러자 부처님은 파세나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교단 안에서는 직업이나 신분이 문제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마음과 행실이 중요하다. 니다이는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은 자가 됐다.”

왕은 자신의 생각이 모자랐음을 사과하고, 부처님과 니다이에게 예배했다.


〈현우경〉이라는 불경에 기록된 이야기다. 여기엔 몇 군데 눈여겨볼 데가 있다. 우선 인도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계급구조가 부정되고 있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은 인간 이하의 버림받은 인생으로 취급을 받는다. 〈마누법전〉에, 그들의 손발이 바라문이나 왕족의 몸에 닿으면, 그것을 잘라버려야 하고, 이들을 바로 본 그들의 눈은 빼 버리도록 되어 있다. 부처님은 이런 사람의 손을 잡고 이끌어 제자로 받아들였다.

두 번째는 파세나디 왕이 니다이에게 사과하고 예배한 사실이다. 이 장면은 인권의식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촉천민을 ‘말하는 짐승’으로 여기던 2600년 전이야 오죽했을까.

일찍이 불교의 스승들은 ‘야차와 부살은 백지장 하나 차이’라고 가르쳤다. 남을 헐뜯고 욕심만 채우려는 순간 야차가 되고,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내는 순간 보살이 된다는 것이다. 똥꾼이 수행자가 된 것이나, 파세나디 왕이 그에게 사과하고 예배한 것은 백지장을 뒤집어 보살이 된 사례들이다.

요즘 세상이 두 쪽으로 날카롭게 나뉘어 갈등하고 충돌한다. 특히 날로 심해지는 빈부 격차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뾰족한 해법도 없다. 서민 정권을 자처하는 현정부가 나서고는 있지만,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실마리는 야차와 보살의 차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야차의 마음을 보살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든 것 가운데, 본래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 가지고 있다가 내놓아야 한다. 아옹다옹 집착하다 보면 업보만 두터워진다. 왕이 똥꾼에게 사과하듯이 한 생각 고쳐먹는 곳에서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문이 열린다. 부처님은 이 길을 일러주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들은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5일)이 되면 마음의 소원을 담은 등을 내건다. 그러나 등불을 켜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다.

오현 /스님·설악산 백담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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