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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끼어들기’인가, ‘새판짜기’인가? / 이영자

등록 2006-05-04 21:43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세상읽기
남성들이 독점해 왔던 소위 ‘힘쓰는’ 자리들이 여성에게 넘어가는 일이 생길 때면 그 희귀함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고 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 부여에 관심이 쏠린다. 그 희귀함을 발생시킨 배경 또는 그 우연성과 필연성을 따지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특히 ‘왜 하필 여성인가?’란 물음에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드러난다. 그런데 사실 진짜 뉴스거리는 바로 이런 의문을 던지는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성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껏 그 수많은 권력의 자리들을 남성들이 자질을 불문하고 무조건 독식해 온 것을 두고 우리 사회는 단 한번이라도 ‘왜 또 남성인가?’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었던가?

여성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남성들의 필요에 따른 것인지, 여성들의 끈질긴 추구로 그런 것인지를 따지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양자 사이에 여성의 ‘끼어들기’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 사이에도 동상이몽이 있을 수 있으니 이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남성들이 여성의 수혈을 ‘국면 전환용 묘수’, ‘여성 표를 의식한 선거전략’, ‘여성친화적 이미지 연출’ 등으로만 재단한다면, 이는 기존의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을 너무도 가볍게 보는 단세포적 발상이다. 지난 대선 이후부터 구태정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건만 계파, 정파 사이 싸움만 무성하거나 정당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이 없다. 그래서 기존의 정치판은 무능과 부도덕성으로 위기상황을 드러내고 자기파괴로까지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여성의 수혈은 결코 생색낼 일이 아니라 구제요청을 하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이 구제요청이 남성들 스스로 새판짜기에 나서야 할 책무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질 뿐이다. 아직도 색깔론의 유령에 시달리는 제1야당과 ‘개혁정당’의 정체성조차 헷갈리는 여당이 또다시 선거철을 맞아 그들의 뿌리깊은 치부를 반짝 ‘이미지’로 덮으려는 상술로 유권자를 오도하려는 것은 용서하기 어렵다. 만일 그들에게 ‘새판짜기’의 절박감과 진정성이 있다고 한다면, 여성의 수혈을 새판짜기의 새로운 전기로 삼는 각고의 노력과 의지를 스스로 확실하게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한편, 여성들에게 ‘끼어들기’는 일부 여성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인지, 여성들의 권익과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여정인지,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새판짜기’를 위한 특단의 시도인지, 그 방향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성과 경쟁하는 ‘명예남성’의 시대가 퇴조하고 ‘여성성’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면 그 대안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성 불균형을 바로잡는 양적 증가를 넘어서 정치판의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사회적 약자의 삶을 살아온 여성들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대변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고, 특히 오늘의 양극화 시대에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 다수를 위한 새판짜기 정치에 투신해야만 한다. 따라서 요즈음 유행어처럼 떠도는 ‘부드러운 이미지’나 ‘온화한 리더십의 원만한 여성’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위기를 ‘새판짜기’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구체적 기획과 주체적 동력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는 ‘왜 여성인가?’의 물음을 ‘어떤 여성인가?’의 물음으로 발전시키는 것과도 상통한다.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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