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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당정분리와 구름 위의 대통령 / 조상희

등록 2006-05-08 21:02

조상희 건국대 교수·변호사
조상희 건국대 교수·변호사
세상읽기
빌 클린턴은 1992년 마흔여섯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 정책을 실행하려고 애썼지만 그 이전에 12년 동안 집권했던 공화당 세력에 포위돼 일을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했다. 재정적자 축소, 의료제도 개혁, 동성애자의 군복무 금지 철폐 등이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과 보수우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닥쳐 추진하기 어렵게 되자, 반대 의원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설득작업을 벌였다.

민주당 내의 반대파 의원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서 호소하였고, 공화당 반대파 의원들에게는 따로 식사에 초대를 해서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협상 전술을 쓰기도 하였다. 물론 이 과정은 클린턴 대통령 혼자만 한 것이 아니라, 앨 고어 부통령, 백악관 비서실장, 관련 부처 장관, 민주당 원내총무 등을 전방위로 동원하여 인간관계, 이해관계 등 모든 연결고리를 찾아서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하였다. 국회 연설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정 안 되면 법률안을 후퇴시키거나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빌 클린턴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대통령이 당을 지배하는 관계를 탈피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당원의 한사람으로서 의사표명만을 하겠다고 하였다. 협박이나 매수라는 구시대의 공작정치를 하지 않겠으니 당이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2005년 9월에 연정을 제안하면서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뿐 정당이 정권을 잡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생각하고 당정 협의를 하고 여야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통일을 하게 되는 국회 현상을 비판하였다. 4대 개혁법안 처리가 지연되어 여당의 지도부가 사퇴하여도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당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과정의 ‘성장통’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4월 말에는 3·30 부동산 대책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렵사리 개정한 사립학교법을 다시 양보하라고 여당 원내대표에게 주문하였다. 결국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해결되었지만, 개혁입법을 완성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여당의원들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도무지 이해 못할 선문답이었다.

조직사회에서 최고 우두머리는 자신이 최종 해결사라는 점을 돋보이게 하고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밑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은근히 지켜보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가 계속 봉합이 되지 않으면 못이기는 척 나서서는 반대하는 집단에게 그대들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한마디만 한다. 그러면 반대하는 집단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 최고 보스가 다시 나서서 일거에 사태를 정리해 버린다.

당정분리를 통해서 대통령은 구름 위에 올라가 버렸다. 국정을 총괄하는 영도자이기 때문에 여당과 야당 그리고 일반 여론이 싸우는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법률 하나를 통과시키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노라면 그들은 대통령과 함께 의회 현장에서 여론 한가운데서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보통사람들은 구름 위에서 정치판을 구경하면서 자격이 없느니 저질이라느니 하다가 나중에는 뜻모를 선문답을 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너지, 자원 외교를 위한 국외 순방을 나선 대통령은 또 화두를 던졌다. 길게 보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구름 위에서 지켜보다가 양보하지 그랬냐고 힐난할 것인가.

조상희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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