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아침햇발
1975년 4월 사이공. 북베트남과 민족해방전선(이른바 베트콩)의 대공세에 남베트남(월남)은 대부분 무너졌다. 오로지 미군에 의지해 연명하던 남베트남은 미군의 퇴각과 함께 대통령부터 기지촌의 댄서에 이르기까지 탈출에 목숨을 걸었다. 응우옌반티에우(티우) 대통령은 4월21일 대통령직을 부통령 쩐반흐엉에게 물려준 뒤 탈출했고, 26일 그 역시 탈출했다.
사이공 함락 전날인 4월29일, 적은 미국 대사관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대사관은 철책에 매달린 사람, 담 넘었다가 쫓겨나는 사람들, 헬리콥터 사다리에 엉겨붙은 사람들 등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이 가운데 마지막 헬기 탈출 장면은 베트남 전쟁의 ‘비극적 종말’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이른바 자유세계에서 애용됐다.
15년 뒤 이 장면은, 80여년 동안 베트남을 강점했던 프랑스 작곡가와 영국 기획자 덕분에 뮤지컬로 되살아났다. 실물 크기의 75%로 재현한 모형 헬기, 거대한 굉음과 거센 돌개바람은 압도하는 사실성으로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 옆에서 미스 사이공(킴)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미스터 아메리카(크리스)의 모습은 자유세계 관객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했다. 〈미스 사이공〉이다.
198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스물세 나라 도시 240곳을 돌며 1만9000회 이상 공연하고, 3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캐츠〉와 함께 4대 빅 뮤지컬로 꼽힌다. 오는 6월말 한국 초연을 앞두고 벌써 공연계 안팎이 들썩인다. 흥행 여부를 가늠하는 〈티켓 링크〉의 예매 순위에서 공연 두달반 전부터 이미 3위에 올라 있었다. 아주 드문 일이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피어난 순정한 사랑, 아직도 애창되는 숀버그의 음악은 지금도 사람들 가슴을 애잔하게 울린다. 그러나 ‘베트콩’은 악마로, 미국은 구원의 천사로 그리는 그 내용은 베트남전의 진실을 참혹하게 유린한다. 순전히 인도차이나 패권을 위해 베트남전을 주도한 미군은, 2차대전 때 쏘았던 소총 탄환의 갑절, 태평양 전쟁에 쏟아부은 폭탄의 1.5배를 베트남에 쏟아부었다. 네이팜탄으로 정글을 불바다로 만들었으며, 고엽제로 자연과 인간을 불구로 만들었다. 110만명의 북베트남 정규군과 민족해방전선의 비정규군을 사살했고, 민간인 50여만명을 희생시켰다. 그런 미군과 함께 탈주를 꾀했던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인민들에게 치욕의 상징일 뿐이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4월 어느 날, 〈조선일보〉는 ‘베트남 여인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르포기사를 실었다. 관련 사진엔 ‘한국의 왕자님, 우리를 데려가 주오’라는 설명을 붙였다. 31년 전 미군과 함께 탈주하려고 아우성치던 미스 사이공을 연상시키는 기사였다. 베트남전에 8년 동안 31만명을 파병해 4만여 명의 민족해방전선의 전사를 사살한 나라, 5천~2만명 사이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수천 곳의 자연마을을 불태웠던 나라에서 유력지를 자처하는 신문이다.
이제 사이공은 호찌민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미스 사이공도 사라졌다. 그 자리엔 전쟁과 폐허를 딛고 일어나 새 조국을 건설해온 미스 호찌민이 서 있다. 미스 호찌민은 80년 동안 강점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고, 10년 동안 미군 및 한국군에 대항해 끝내 승리를 거둔 불굴의 전사이고, 전사의 어머니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조작된 이미지의 미스 사이공이 아니다. 바로 이들이다. (〈한겨레〉 기고를 통해 진실과 양심의 무게를 알려준 레호앙 〈뚜오이째신문〉 편집국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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