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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라, 달라지네”

등록 2006-05-15 00:35수정 2006-05-15 00:37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
김두식 독자권익위원 기고
영혼 울리는 사람이야기 등
눈높이 딱 맞춰 다가와
멋진 기획과 문제제기
조금만 더 힘내라!
기독교적 성장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수자의 편에 서서 더 낮은 곳을 지향하는 삶’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었으나,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한 까닭에 늘 죄책감에만 시달리는 ‘어정쩡한’ 기독 시민. 바로 제 얘기인데요. 그 부담과 죄책감 때문에 <한겨레>를 읽게 되었고 한동안 글도 썼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민족이나 민중, 어느 가치에도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독자랍니다.

그런 제가 제2 창간에 나선 한겨레를 향해 자기 주제파악도 못한 비판을 날린 것이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세대와 대화하는 신문이 되어 달라고, 강한 주장보다는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사람’ 이야기로 우리 영혼을 울려 달라고, ‘일등신문’ 비판보다는 심층적인 기획취재에 힘을 모아 달라고, ‘어정쩡한’ 독자다운 요구사항을 긁적였지요.

큰 기대 없이 떠들었던 건데 웬걸, 그 날부터 딱 제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춰 다가오는 한겨레의 변화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세분화된 섹션은 교육, 생활, 대중문화, 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사들은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고민과 대안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용석, 이정우 같은 철학자의 깊이 있는 사색, 김어준의 ‘깨는’ 시각, 형경과 미라의 ‘정답’ 아닌 솔직한 조언, 비빔툰(홍승우 만세!)과 박재동의 일상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면은 한겨레의 변화 의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었지요. 뚝심 있게 밀어붙인 ‘선진대안포럼’, 어린이날 때우기식 기사 관행을 넘어선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심층취재의 힘을 보여준 ‘삼성-현대차 비교’ 같은 연재물들도 멋진 기획이었습니다. 일부 대학의 신입생 대상 폭력이나 교도소 성폭력을 집중 보도한 것 역시, 한겨레의 저력을 보여주며 민주화 이후의 인권운동 방향을 제시한 용기 있는 문제제기로 기억에 남네요. 이제 한겨레가 “시각은 옳지만 재미없고 정보가 부족하다”는 오랜 비판을 딛고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겨레가 변했다고 주위 환경까지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날로 보수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진보는 더욱 분화되어 그 중 어느 한 가치만 따라가기도 어렵게 되었고, 활자에 익숙한 세대는 이미 퇴장을 준비하고 있어 신문 산업 전체가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지요. 그 거친 풍파를 꿋꿋이 이겨내며 ‘올바름, 재미, 감동’ 등 어쩌면 처음부터 공존 불가능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뛰어온 한겨레에 오늘만이라도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겨레가 이념적 지향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런 불만을 품고도 한겨레를 버리지 않은 동료 독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한겨레는 저처럼 ‘어정쩡한’ 독자가 아니라, “논조가 마음에 안 들어 신문 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열혈 독자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신문이니까요. 한 가지 목소리만 남아 축제의 활력을 잃어가는 척박한 땅에서 다른 목소리를 지켜온 대구 경북의 한겨레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전합니다.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 한겨레신문사 독자권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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