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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완상칼럼] 심기경호와 역사보좌

등록 2006-05-15 21:43수정 2006-06-12 11:05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칼럼
최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심각한 지도력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인기가 31%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여기에는 상황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카트리나 재앙에 대한 늑장대응, 미국 주요 항구 운영을 두바이 회사에 맡기려 했던 점,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수렁 등이 그의 인기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정말 염려스러운 요인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는 듯하다.

최근 미국 유수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4월3일치)는 그의 지도력의 본질적 결함이 일종의 과잉충성분자들을 자기 주변에 포진시키는 부시 자신의 성향에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들을 ‘심기 경호자들’(mind guards)이라고 표현했다. 퍽 흥미롭고 의미있는 표현이다.

한때 우리도 이 낱말에 익숙했고, 또 그 현상에 대해 불안해했다. 군사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대통령의 경호를 맡은 사람들이 심기경호를 강조했다. 그것을 통해 대통령의 심기를 즐겁게 해주고 편안하게 모시려 했다. 우리는 이것이 정치 후진국의 특징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미국 대통령 주변에도 그런 보좌관들이 둘러싸고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을 보좌하는 데는 적어도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첫째로, 역사적 관점에서 보좌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하기 위해 때로는 쓴소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정책적 보좌이다. 정책의 장단점을 두루 날카롭게 평가해 줌으로써 대통령이 더 나은 정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여기에도 때로 윗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셋째로 심기보좌이다. 당장 그리고 항상 윗분의 기분만 즐겁게 해주는 보좌다. 이를테면 신문 가판(초판)에서 윗분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가 있으면 그것을 삭제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그런데 언론은 흥미롭게도 그 기사를 빼주는 대가로 권력을 오히려 적당히 조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빌미를 얻게 된다. 신문 가판에서 불쾌한 기사를 잠시 거둬내는 재능을 가진 부하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되면 훗날 ‘역사가판’에서 정말 불쾌하고 불공정한 평가가 내려질 때 그들이 과연 그것을 거둬내 줄 수 있을까?

미국같이 막강한 패권국가의 최고 권력 주변에 심기 경호꾼들이 포위하고 있다고 하니, 미국의 영향을 이래저래 받게 되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가지 피해가 속출할까 염려된다. 이미 심기경호로 피해를 겪은 우리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인기가 곤두박질을 쳐도 부시 대통령은 조금도 흔들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은근히 더 걱정이 된다. 그는 인간적 고뇌와 번민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확신에 더 차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는 2004년 여름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이렇게 단호하게 선언한 적이 있다.

“나는 신이 나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그런 확신 없이 내 직분을 수행해 낼 수 없다.”

신의 명령에 따라 전 세계에 자유를 확장시킨다는 그 신념이 그를 단호한 지도자로 부각시킨다. 게다가 그의 심기보좌관들이 이런 그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잡아 주기에 역설적으로 그것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세계 도처에서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인류 비극의 태반은 지나친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는 진실을 기억한다면 그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 21세기 상황에서 정말 참 평화와 자유를 원한다면 세계 도처의 최고 권력 주변에서 심기경호꾼들이 물러서고 그 자리에 역사보좌진들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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