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공무원노조 탄압하는 정부의 ‘생떼’ / 하종강

등록 2006-05-17 20:02수정 2006-06-09 15:21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21세기 한국’의 대학 강의실 풍경이다. 다양한 머리 모양을 한 학생들 앞에서 역시 멋들어지게 긴 머리를 한 교수님이 말한다. “20세기 한국에서는 ‘장발 단속’이라는 풍습이 있었단다.”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까르르 …’ 웃는다.

경찰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장발 단속을 하던 1970년대 초에 그 시사만화를 보면서 통쾌했던 기억이 새로운 이유는 거의 같은 일을 요즘 가끔 겪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십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신성한 교직이 어떻게 노동자냐? 교사 노조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1500명이나 되는 선생님들이 길거리로 쫓겨난 적이 있었단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까르르’까지는 아니지만 참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조합원이 10만명 가까이 되는 전교조가 불과 10여년 전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신기한 표정이 된다. 과거 대한민국 정부의 엄중한 전교조 탄압은 역사 속에서 이제 한낱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행정자치부가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면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보기에는 ‘불법 단체’인 공무원노조를 반쪽짜리 합법노조로 전환시키겠다면서 행자부가 각급기관에 내려보낸 ‘추진지침’에는 “엄중조치” “일체의 대화 및 교섭 불허” “단호하게 조치” 등 단세포적 표현들이 굵은 활자로 거듭 강조돼 있고, 그러한 조처를 “유관기관간 긴밀한 공조체제 유지” 아래 추진하되, 이러한 “정부 방침을 불이행하는 각급 기관에 대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행정·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확행”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표현들이 곳곳에 보인다. “1 대 1로 ‘설득전담반’ 편성” “공무원 개별(공동) 면담, 가정 방문, 전화 등을 통하여 본인 및 가족 설득” “이메일을 가족(배우자)·친지 등에 발송”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 내는 사람들의 역사의식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행 여부를 점검하러 다니는 행자부 직원들의 기관 출입이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저지되기도 하고, 기관에 따라서는 행자부의 추진지침 공문을 실·과·소와 읍·면·동에 보내지 않기로 공무원노조와 합의하자 행자부 직원이 “왜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전화를 해서 야심한 시간에 부랴부랴 공문을 발송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공무원노조 간부가 이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이자 다시 공문을 취소했다는 데 이르면, 세상에 이런 코미디도 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국제기준’에 턱없이 미달하는 현행 공무원노조법을 빨리 개정하는 것이다. 단체행동권은 접어두고라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편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장하는 정부가 노동기본권의 보편적 국제기준은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이 이미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두고 ‘불법 점거’라고 하는 일본의 주장이 ‘생떼’라면, 같은 원리로 공무원 사회를 이미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공무원노조를 ‘불법 노조’라고 하는 정부의 주장 역시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공무원노조를 인정하는 것은 불량주택을 양성화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머잖은 미래의 교실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노동삼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가 불법이라고 온갖 수단으로 탄압한 적이 있었단다.” 학생들이 ‘까르르 …’ 웃는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