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
기고
지난 4일 한명숙 총리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각 부처가 최대한 노력하고, 다음 선거부터는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근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공명선거 관계장관 회의에서는 투표용지를 복권화하거나 도서·문화상품권을 주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모색했다. 아마 2007년 대선부터 적용될 구체적 방안 가운데 포함될 모양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을 걱정하고 미리 준비하는 자세는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근본 방안’을 정말 ‘근본적’으로 잘못 잡고 있기에 유감스럽다.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신성한 한 표를 복권이나 도서·문화상품권과 등치시킨다는 발상은 크게 잘못됐다. 복권이나 상품권으로 투표행위에 사행심을 조장시키고 희화화하는 데 정부가 앞장설 수 있는가. 대신 정부는 투표가 민주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요, 기권은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요 해독이라는 것을 전파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십보 양보하더라도 투표용지를 복권화하고 투표 때 도서·문화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은 배 아픈데 두통약 주는 격이다. 현재 투표를 안 하는 원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투표일에도 출근을 요구하는 기업관행,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과 불신 및 냉소주의 등이다. 투표용지를 복권화하고 상품권을 준다고 출근을 않고 투표를 할 것이며,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과 믿음이 회복될 것인가.
백보 양보해서 복권화하고 상품권을 제공하는 데 엄청난 세금이 추가로 들더라도 떨어지는 투표율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나마 채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험은 이미 큰 효험이 없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1999년 울산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20인치 텔레비전 등을 경품으로 걸고 투표참여를 유인한 바 있다. 이때는 약간의 투표율 상승이 있었다. 또 2000년 10월 지방의원 보궐선거 때 충북 진천군에서는 2000만원의 상금으로 읍·면 사이의 투표참여를 경쟁시킨 결과 전국 평균(24.4%)보다 높은 투표율(35.8%)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의 지방선거(67.7%)보다 크게 떨어진 결과였다.
천보 양보해서 투표하는 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례가 외국에 있다면 좋은 방안이라고 배울 수도 있다. 아마 한국이 2007년 대선에서 투표를 복권화하고 상품권을 나눠준다면 세계 언론매체의 토픽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눈 씻고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기차 삯을 낮춰주고 여비를 보조해준 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투표하러 귀향할 때 정부가 도와준 것이지 투표에 여비를 인센티브로 교환한 것은 아니었다.
1987년 이후 수직하강 중인 우리나라의 투표율을 막으려면 ‘책임투표제’를 도입하는 게 적격이다. 책임투표제는 벨기에·그리스·오스트레일리아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100년 전부터 채택하고 있는 ‘의무투표제’의 다른 말이다. 유권자라면 모두 책임지고 투표를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물론 투표를 못할 상황을 소명하는 경우나 일정 연령 이상은 예외로 한다. 투표장에 와서 기권을 표기해도 되나 안 왔을 경우에는 과태료나 행정적인 제재를 받는다.
책임투표제를 도입하는 데는 추가비용이 많지 않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는 만점이다. 어느 때보다 책임투표제 도입에 대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필요성이 높다. 정치개혁이 가속화했으나 투표율 하락에 따른 대의 민주주의의 폐해는 커졌기 때문이다. 투표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임을 교육하면서 투표를 재미있고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할 시점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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