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2 18:35
수정 : 2005.02.22 18:35
100년이 넘도록 이땅에서 일제하 민족 독립운동을 비롯하여 ‘기독성’과 민주성을 뿌리내리기 위해 매진해온 것으로 알려진 한 사회운동 단체가 있다. 이 단체의 역사는 한국 시민사회가 걸어 온 발자취를 대변해주는 것으로 비쳐 왔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역사에는 그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여성들의 권리를 차별해 온 수치스러움이 담겨 있다. 더 큰 역설은 이 단체가 지금 이 시점까지도 그 수치스러움을 오히려 자랑스러운 관행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인권운동을 표방하는 단체가 내부적으로는 인권차별을 자행하는 기상천외의 현장이 바로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서울기독교청년회(YMCA)다.
마침내 서울기독교청년회 여성회원들은 총회원권을 배제당해 온 수치스런 역사를 끝내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온몸을 던져 싸워왔다. 이 모임에서 여성은 회비를 납부하는 전체 회원의 60% 이상, 현장 자원봉사활동 참여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에 주요 의사결정 및 집행구조에서 여성의 비율은 이사회 0%, 위원회 9%, 전문지도력 간사 6%에 불과하고, 과장급 이상 상위직은 95% 이상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인권차별은 역사의 무대 뒤에서 묵묵히 힘겨운 뒷바라지를 해온 여성 회원들에게 훈장을 달아주기는커녕 선거권, 피선거권, 의결권 등 총회원권을 배제시켜 온 관행으로 이 단체의 헌장과 한국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성차별을 자행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성차별 관행은 지역 또는 외국의 어느 기독교청년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서울 쪽만의 욕된 ‘자랑거리’일 뿐이다.
기독교청년회는 설립 초기부터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해 온 사회운동 조직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청년회의 실무 지도력을 보면, 직원 전체 2천여명 중 약 65%가 여성이다. 1998년 세계 총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기독교청년회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아우르는 기독교운동’임을 재확인하고 특히 여성들이 더 큰 책임을 맡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한 바 있다. 한국 기독교청년회 역시 2004년 5월 전국대회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업을 추진한다는 뜻을 밝히는 헌장 개정과 아울러 조직의 성차별적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연맹 내에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세계적, 전국적 추세를 외면한 서울‘와이’는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 여성단체, 시민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으로부터 성차별을 시정하라는 권고조처, 연대 서명운동, 성명서 발표 등의 포화를 맞아 왔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청년회 전국대회도 전국‘와이’가 서울‘와이’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고 반인권적 집단으로 오인될 지경에 이르렀음을 개탄했다. 서울와이엠시에이 성차별철폐회원연대회의는 ‘서울와이가 소수자들에 의해 사유화되고 권력화되면서 기독교 사회운동보다는 자기 몸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어 본연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서울‘와이’ 이사회는 철저하게 귀를 막고 있다. 이사회는 2월26일에도 남자들만의 총회를 열기로 했다. 이 이사회에는 학교, 언론, 교회, 사회단체 등에서 중책을 맡은 분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서울‘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민사회의 문제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권을 말하는 그곳에서 인권이 무참하게 유린된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 역사의 마지막 보루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권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인권을 부르짖어온 덕분에 사회적 훈장을 달게 된 바로 그곳에서 반인권의 오래된 악취가 풍기고 있다면, 그 훈장을 달아준 우리 시민사회가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인권 역사 그 자체를 모독하고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자/가톨릭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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