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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 여성 노동자 강주룡과 KTX 여승무원 / 하종강

등록 2006-06-12 19:27수정 2006-06-13 14:37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역사학자 박준성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는 1931년 5월29일 새벽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다. 조선인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본인 남성 노동자들의 절반이었고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 조선인 남성 노동자들의 또 절반이었던 상황에서 평양 선교리 평원고무공장이 제멋대로 임금을 깎겠다고 발표하자 여성 노동자들은 굶어죽기로 싸우겠다고 아사동맹을 결의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회사는 노동자 49명 전원을 해고하고 한밤중에 일본 경찰을 끌어들여 공장 밖으로 쫓아냈다.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정당한 싸움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마음먹고 광목 한 필을 사서 을밀대에 올라간 강주룡은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외치고 또 외쳤다.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 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 구태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끌어낼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

당시 다른 12개 고무공장에서도 평원고무공장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임금을 깎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따라서 평원공장의 결과는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2300여 노동자의 임금에도 영향을 끼칠 문제였다.

한국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의 투쟁 100일을 맞아 철도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촉구하는 500인 동조단식 현장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의 얼굴 위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의 모습이 겹쳐져 자꾸 목이 메었다. 75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가? 나라를 빼앗긴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쩌면 이렇게 같을 수 있는가?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 100일이 되도록 이처럼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은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단식농성장의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은 ‘케이티엑스 관광레저’에 취업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싸우고 있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외치고 또 외쳤다.

“우리의 투쟁이 실패하면 결국 이 땅의 1500만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몰아내는 시금석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외주위탁에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인 민세원 지부장은 “이대로 가면 지금 철도공사의 정규직들 역시 빠른 속도로 외주위탁 문제에 부딪히게 될 거예요. 항공사 승무원들 역시 몇 년 안에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러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확산이 우리 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할 때가 됐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사회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비정규직 고용은 한계기업이 노동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잠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함으로써 선진기업으로 도약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예전보다 더 적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면서, 더 적은 보수를 줌으로써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전락시킨 기업들의 경영이 대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하자.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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