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3 19:30
수정 : 2005.02.23 19:30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두 돌을 맞는다는 보도에 많은 사람이 놀란다. “아니, 2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잠깐 있다가 한 번 더 놀란다.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는 말이야?” 선거 때 표를 찍었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시간은 사건의 함수이기에, 지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이 많았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에게 일어난 일로 따지면 지난 2년은 이전 몇몇 대통령의 임기 전체에 맞먹는다. 그 정점에는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이 있지만, 임기 말에 불거지기 마련인 측근 비리 추문까지도 첫해에 겪었다.
그러나 많은 사건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물 흐르듯이 술술 풀려가는 시간이라면 아무리 많은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길게 느껴질 까닭이 없다. 노 대통령은 숱한 시도를 했다. 분권형 국정운영을 실천했고, 새로운 권력 엘리트를 등장시켰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재조정했는가 하면, 이라크 파병을 단행했다. 그의 덕으로 군소 정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몇 달 만에 제1당이 됐고, 새 정당정치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 행정수도와 4대 개혁법안을 추진한 것도 큰 사건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와 역사의 발전 방향에 맞는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어느 것 하나 순조롭지 않았다. 왜 그럴까.
많은 이들은 그의 시도를 그럴 듯하게 생각하면서도 바로 물음표를 붙인다. ‘맞다, 그러나’(yes, but)의 수용태도다. 이유는 다양하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이를 현 정권이 처한 일곱 가지 딜레마로 요약한다. ‘단기적 처방과 장기적 효과의 딜레마’ ‘집중 권력에 의존한 분권화의 딜레마’ ‘권위주의 타파가 가져온 권위 실종 딜레마’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좀더 단순·명료하게 표현한다. ‘중심이 없어’ ‘끝까지 해나갈 수 있을까’ ‘말이 너무 앞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질이 떨어져’ ‘뭘 하려는지 헷갈려’ 등등. 그러다 보니 좋은 시도조차 선뜻 지지하기 어렵고 냉소적이 된다. ‘맞다, 맞아’라는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행운아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기 정권을 출범시킨 것처럼 새 임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될 만큼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2기 정권’의 노 대통령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을 몇 가지 짚어보자.
우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공격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기 바란다. 정책은 국민 두루 만족시킬 수 없더라도 그들 전체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더라도 일일이 싸우려 하기보다 큰 흐름을 잡아나가면 된다. 시간이 지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반대했던 사람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가격 안정 정책이나 대북 포용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성과 동기보다 원칙과 사상이 부각되도록 하는 것도 필수다. 공적인 삶에서 개성이 두드러지면 부정적인 구실을 하기 쉽다. 잘해봐야 입방아에 오르고 잘못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성 추문에 시달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지도자는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튀는 개성이 아니라 국민에게 주는 편안함과 신뢰로 평가받는다. 물음표보다 느낌표가 찍히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과제를 분명히 추구하는 일이다. 북한 핵 문제 및 남북관계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기 중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990년대 수교 직후 중국과 이룬 교류 수준으로 남북 교류를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더 꼽자면 선진국에 가까운 수준까지 복지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소득이 훨씬 낮은 시기에 복지국을 만들었다. 이는 통일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10여년은 진보세력이 힘을 키우고 의제를 관철해온 시기였다. 노 대통령은 그 성과를 이어받아 심화시키고 한반도 전체로 확대시킬 책임이 있다. 건국 이후 대부분의 대통령이 임기 앞쪽보다 뒤쪽에서 못했지만 노 대통령은 훨씬 나은 처지에 있다.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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