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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나프타’보다 가혹한 한-미 협정 / 조희연

등록 2006-06-13 18:58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기고
장차 한국 경제와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이에 항의하여 시위를 벌이던 미국 원정 시위대도 돌아왔다. 나도 개인적으로 원정대의 한 사람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과격시위 우려와는 달리 변호사를 대동하고 현지 경찰과 협의하면서 진행하는 시위 경험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골치아픈 고국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가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함께 행동하는 재미 동포들을 보면서는 존경심마저 느꼈다. 이전에는 관광차 사진 찍으며 들렀던 백악관과 국회 의사당 앞에서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워싱턴 시내를 “다운 다운 에프티에이!”라고 외치며 걸으니 워싱턴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개방만이 살길이다’란 생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불가피한 경제적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997년 구제금융 경제위기 때 재협상론이 ‘역적’으로 몰렸던 것을 상기해 보자.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고 우리가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였던 ‘고금리’ 정책은 엄청난 실업과 파산 등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고, 지금은 국제통화기금도 재검토하는 사항이다. 청년시절의 모험을 50대에 밀어붙인다면, 50대 도약도 가능하겠지만 심장마비가 날 수도 있고, 가족들이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와 사회의 성장, 나이듦에 맞는 신중함과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1960~70년대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식의 논리의 연장에서 보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운동은 제2의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막으려는 운동이며, 너무도 졸속으로 추진되는 무모한 개방노선에 대한 전환운동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현재의 협정 추진과정 및 내용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없이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나, 협상의 내용이 되어야 할 4대 선결조건이 성의표시로 양보되는 것은 물론, 협상 내용을 3년 동안 비밀로 한다는 점들이 걱정을 더하게 한다. 일부 부문에서 수출이 는다거나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그것들이 주로 장기적인 생산성 증대효과로 추정된다는 점도 과연 협정의 영향을 충분히 타산하고 진행하는지 우려된다. 개방의 결과 단기간에 출현하게 될 하층 서비스 부문의 몰락, 농업 포기 상황, 양극화 문제에서도 깊은 성찰이 없다. 이미 협정 초안에 들어가 있는 미국 기업의 대정부 소송 권리나 ‘이행의무 부과 금지’ 조항, 금융개방의 새로운 쟁점들(‘상업적 주재’에서 본점 자본금 인정이나 추가 금융상품 등)에 대해서도 개방 낙관론만이 득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우려스럽다.

미국식의 자유무역협정은 유럽 모델과도 다르고 가장 가혹하며 시장 근본주의적 방식이다. 우리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의 전철을 밟는 한-미 협정이 아니라 건강, 식품안전, 환경, 필수 공공서비스를 훼손하지 않는 사회적 성격의 모델도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최소한 현재의 협상 진행과정에서 노동기본권, 고용, 공공서비스, 보건, 교육, 문화적 다양성, 식량주권 등에 미치는 영향의 평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나프타보다 더 가혹한 자유무역협정이 동아시아에 출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본, 기업과 시장의 ‘자유’는 무한히 증대하는 데 반해 서민들과 민중들의 권리와 복지는 무한히 축소되는 현존 자유무역협정 개방 프레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우리의 우려이고 소망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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