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혁신업무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사표를 제출하고 대학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윤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감사원장으로 추천할 정도로 신망이 높은 인물이며 정부혁신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역점 정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자신이 믿는 사람이 준비한 주요 국정사업 내용을 대통령은 왜 장기간 보고받지 않았을까? 상식적으로 보면, 준비한 내용이 불성실하여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대통령이 시간을 낼 만큼 우선순위가 높지 않거나,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보고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윤 교수의 능력과 성품에 대한 학계의 평가로 보아 허술히 준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청와대에서만도 정책실과 혁신관리수석이 같이 추진할 정도의 과제라면 장기간 보고를 받지 않을 정도로 우선순위가 떨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이미 벌여놓은 문제들로도 벅차 새로운 개혁과제의 추진은 더 이상 어렵다는 청와대와 대립했다는 불화설은 이런 가정에 무게를 실어준다. 예상했던 관료사회의 반발과 복지부동의 벽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진행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분석과 평가를 통해 새로운 전략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새로운 정책대안을 준비하였을 위원회로서는 청와대의 태도 변화에 크게 실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유추가 얼마나 진실과 부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능과 공갈 정책으로 평가받는 현 정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신뢰를 받았던 전문가조차 기초적인 보고도 차단되어 사퇴한다면 현 정권의 전문성과 개혁에 대한 의지는 증발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초심이 변하게 된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야 앞으로 유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외환위기 사태, 외환은행 불법매각, 아파트값 폭등, 전 국토의 투기장화, 환경 파괴, 새만금사업, 황우석 사건, 노동조건의 악화, 한-미 자유무역협정 졸속 추진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반복하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입으로만 하는 개혁’에 국민들의 삶은 점점 더 고달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많은 학자들이 청와대, 위원회 등 정부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해 왔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개혁 성과는 아직도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아무리 목표와 방향이 옳아도 추진 과정이 미숙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어느 사안이나 상반되는 이해집단이 있으므로 결국은 사회적 힘겨루기가 있고 그 결과는 힘의 논리대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관료집단이나 재벌기업, 건설업계, 언론기관 같은 막강한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그들이 부당하게 누리는 것의 일부분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주려 한다면 정권이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에 부닥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따라서 이제는 정교한 접근전략을 마련할 때이다. 이를 위해 정책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학자, 전문가들이 자신의 실패담, 시행착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털어놓기 바란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들 개인에게 충성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세속적인 출세만을 위해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중한 경험을 사장시키지 말고 공유해 현실성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만들어내,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조차 부자들을 위한 정당에 표를 던질 정도로 실망감과 배신감에 젖어 있는 이 사회에 다시 희망을 갖게 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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