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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Corea’와 ‘Korea’, 그리고 남과 북 / 정용욱

등록 2006-07-02 19:46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세상읽기
미국에는 ‘Corea’라는 이름을 가진 소도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메인주 북동부 해안지방에 있고, 다른 하나는 조지아주 남부에 있다. 또 ‘Korea’라는 지명을 가진 소도시도 버지니아주와 켄터키주에 하나씩 있고, 푸에르토리코에도 한 군데 있다. 이 도시들 이름이 한반도와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지명들은 대체로 백인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붙인 이름이거나 아니면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 경우는 주변 지명에 원주민식 호칭이 많은 것으로 보아 원주민식 지명이 그대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도시들 이름을 알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3년 전 평양에서 연 ‘국호 영문표기에 관한 남북 학술토론회’에서 북쪽의 한 젊은 발표자가 혹시 미국에 ‘Corea’라는 지명이 있는지 확인해 주기를 부탁했다. 호기심이 일어서 어떻게 미국에 그런 지명이 있는 것을 알았는지 되물었다. 그는 그것을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 식민지기에 나온 한 영어문제집에서 보았고, 일본인이 지은 그 문제집 풀이에서 미국에 ‘Corea’라는 지명이 있어서 우리나라 영문 표기가 ‘Corea’에서 ‘Korea’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보았다고 했다.

그 젊은 학자의 설명을 듣고 내심 놀랍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북 사람들은 3천만권이나 되는 인민대학습당의 장서량을 자랑하고, 그곳에는 70여년 전 출간된 영어문제집이 남아 있지만 이남 대부분의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1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미국 지명 찾기를 그곳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남과 북의 학문 교류가 자유로워지면 전혀 들일 필요가 없는 노력을 그와 필자는 이 좁은 땅덩이 위에서 이중으로 하고 있다. 남의 학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Corea’라는 미국 지명을 찾기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남한의 주요 도서관들을 모두 뒤졌지만 그 영어문제집을 아직 찾지 못했다.

북한이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대에 ‘다단계 로켓 추진체’를 올려놓은 뒤 북한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되었다. ‘발사 임박설’이 나돌고 미국에서는 ‘선제타격론’까지 등장하며 위기감이 고조되었지만 발사가 아직 확정적이 아니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발사 임박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북한 관련 보도는 매사가 이런 식이다. 사실에 입각한 공정 보도야말로 언론의 생명이지만 많은 언론이 북에 대한 보도는 사실의 진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정보에 입각한 행위들은 항상 소동과 해프닝으로 끝나기 마련이고, 그 뒤에 남는 것은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의심스러운 정치적 계산들뿐이다. 이번에도 북한은 충격요법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북-미 양자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전달하고,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미국 국내는 물론 지구촌 각 나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서만은 6자회담의 틀을 고집한다.

영문 국호표기 문제의 핵심 쟁점은 명칭 변경에 한국인이 주동성을 발휘했는가, 아니면 타의에 의해 강요되었는가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분석해야 하지만 어쨌든 이 땅의 주인들은 자기 나라 영문 이름도 스스로 확정할 수 없는 모호성 속에서 지난 한 세기를 살았고, 금세기에도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일개 문제풀이에 매달리며, ‘미사일 위기설’이라는 모호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젊은 학자에게 검색 결과를 알려주고, 또 이 모든 모호성을 해소할 그날은 언제일런가.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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