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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신문법 둘러싼 정치공방 이젠 그만 / 김영욱

등록 2006-07-02 21:52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기고
헌법재판소의 신문법 헌법소원 결정을 두고 ‘누가 이겼나?’ 하는 질문들이 나오고 있다. 2005년 1월 신문법 개정 이후,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법의 주요 규정들이 대부분 위헌이라는 주장을 지면에 반복해 왔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은 그 반대쪽이었다. 헌재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3개사 발행부수 60% 이상’으로 규정한 조항과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신문발전기금 지원에서 제외한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또 신문사 복수 소유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고, 입법자에게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 결정이 ‘위헌론자’의 승리일까? 그렇지 않다. 헌재가 신문법의 기본 틀과 실효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선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 위헌으로 결정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은 특수 일간신문을 동일 시장으로 간주해 실제 적용받을 신문사가 없는 조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원 문제는 헌재가 말한 차등 지원으로 해결하면 된다. 복수 소유 금지는 현행법에서도 이미 한 신문사가 복수 신문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의미가 약한 규정이었다. 기본적으로 헌재는 신문이 가진 공적 기능을 보장하려면 국가 규제가 필요하며 정당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지만 위헌론자도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입법자가 만든 법이 위헌 결정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은 신문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면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내세운 것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들 신문에 ‘우리가 옳았다’는 식의 기사와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겼냐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이미 패자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문이다. 신문은 지속적으로 판매와 광고에서 경쟁력을 잃어왔다. 경영이 무척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유령을 쫓는 싸움을 해 왔다. 나는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언론자유는 침해될 위험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규제나 현상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문법은 아니다. 신문법에서 ‘언론자유 위축론’은 유령에 불과하다. 헌재 결정이 이를 보여준다.

신문업계는 유통 영역에서 과당 경쟁과 비효율로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가 지원하는 신문유통원 사업에 배달 물량이 많은 신문사들은 비협조적이거나 적대적이다. 비교우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광고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시장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영자료 신고에서는 소극적이며 방어적이다. 한국에서는 포털이 뉴스 소비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그 기반을 제공해 주는 신문의 공동 대응은 없다. 그래서 신문산업이 붕괴되면 그나마 살아남은 신문은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비슷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두세 신문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 되면 미디어로서 신문 자체가 외면받을 수 있다.

헌재 결정이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유령을 사이에 두고 소모적인 기싸움과 정치적 공방을 벌이기보다는, 정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문의 저널리즘과 공론장 기능을 복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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