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팀장
유레카
교황의 납치, 북한의 납치
1858년 6월23일 로마교황청 영지였던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비오(피우스)9세 교황의 명령으로 8살 난 에드가르도 모르타라라는 한 유대인 소년이 납치됐다. 교황청은 이 소년이 가톨릭 세례를 받아 유대교 집안에서 양육할 수 없어 데려왔다고 밝혔다. 모르타라 집안의 하녀가 병에 걸린 이 소년을 돌보다가 신의 자비를 받을 수 있게 하려고 세례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곧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유대인 단체뿐만 아니라 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대통령, 나폴레옹3세 프랑스 황제 등 각국 정치인도 교황을 비난했다. 비오9세는 모르타라는 어떤 형식, 어떤 이유든지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라서 유대교 집에서 키울 수는 없다며 “나는 세계가 생각하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고 일축했다.
당시 이탈리아 통일의 중심세력이던 피에몬테공국은 교황청 영지로 있던 이탈리아의 많은 지역이 여전히 중세 암흑통치로 남아 있다며 이 지역들에 대한 병합을 합리화했다. 1870년 로마마저 교황청 영지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당시 19살로 합법적 성인이 된 모르타라는 가톨릭 신자로 남겠다고 밝혔다. “부모님은 눈물로 호소하고 회유했으나, 나는 초자연적 은총의 힘을 목격했다는 사실 외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실낱같은 욕망도 보이지 않았다.” 모르타라는 그뒤 비오9세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유대인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선교작업에까지 나섰다. 모르타라 가문은 지금도 교황청의 사과를 요구하며, 가톨릭 교회의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북한으로 납치됐다는 김영남씨가 남한 가족을 만나 자신은 현재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특수사업’(대남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전처 요코타 메구미의 본국인 일본은 여전히 북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탈리아 통일을 촉진한 150년 전 모르타라 사건이 한반도에 재현된 느낌이다. 김영남 사건은 한반도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정의길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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