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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급식법 개정, 미약한 시작일 뿐 / 이일영

등록 2006-07-02 22:03수정 2006-07-03 13:35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수천 명의 학생이 식중독을 겪고서야 학교급식법이 지난 30일 부랴부랴 개정됐다. 개정법은 급식 전 과정의 직영화를 원칙으로 하고 일부에 한해 절차를 거쳐 위탁급식을 할 수 있게 했다. 늘 그렇듯이 소 잃고 나서 허둥대는 격이지만, 아직 외양간이 고쳐진 것도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급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 문제다. 식료 생산과 소비 사이에 다단계의 연쇄 고리가 개입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산비용 이외에 거래비용과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비용도 낮추고 위험도 잘 통제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기술, 신뢰도, 시스템 발전 정도에 달려 있다.

신뢰도가 낮고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수준에서는 위탁업체 경영자는 이윤 추구를 위해 고객의 안전과 건강을 희생하는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무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학교장이 많으면 직영급식은 비용도 많이 들고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다. 이렇게 낮은 발전 단계에서는 가정에서 준비하는 도시락이 위탁급식이나 직영급식에서 생기는 조직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부분 가정은 자녀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유인이 충분하고 안전성을 감시하는 측면에서 우월성을 갖는다. 또 가족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특이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시락이 안전하고 맛도 좋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가정 도시락은 과거의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가 직접 소비하는 단순한 시스템 속에서 살았다. 1970년께만 하더라도 음식비 지출에서 곡류와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4분의 3을 넘었다. 어머니가 장만한 도시락도 그러한 삶의 일부였다. 이후 우리의 식생활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식량이나 신선식품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20% 정도일 뿐이다. 대신 가공식품, 외식에 대한 지출이 80%에 이른다. 그 안에서도 외식 비중이 더 높고 앞으로도 좀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 식료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고, 이 사이에는 제조업, 유통업, 외식업 등이 복잡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비(非)가족 형태로 식료를 섭취하는 것이 지배적 방식이 되었다. 거래단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단계마다 위험이 발생하고 전파될 소지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신뢰도, 시스템은 미처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다.

직영급식의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편이지만 절대적 우위의 기초가 뚜렷한 것은 아니다. 보통은 교섭비용을 낮추는 데 전문 급식업체가 우위에 있을 것으로 본다. 직영급식은 조직을 학교 내부에 두기 때문에 감독비용도 많이 든다. 거래비용과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에는 급식기업에 장점이 있다.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는 급식을 직영화해도 위험관리를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결국 훨씬 방대한 문제가 급식체계 바깥에 있다. 아직도 식중독 파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체 과정이 체계화되지 않고 블랙박스로 남아 있는 한, 식중독 원인이 노로바이러스 때문인지 포도상구균 때문인지, 식자재가 문제인지 지하수가 문제인지 찾아낼 수가 없다.

그러니 수입농산물을 포함하여 모든 식료의 공급체인에서의 거래와 위험 정보가 축적되고 교환되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급식업체들도 시스템을 투명하게 정비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직영급식의 장점을 살리려면 생산자, 지역, 학교를 연결하는 공공의 힘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 모든 점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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