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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작가 홍석중씨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조부인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등에 대한 남쪽 출판사들의 저작권 침해를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금강산에서 열린 만해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작인 자신의 소설 〈황진이〉의 남한 내 출간이 불법이라고 주장한 데 이은 두 번째 ‘대남 경고’인 셈이다.
남과 북 사이의 저작권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홍씨의 일련의 발언은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임꺽정〉을 펴낸 사계절출판사는 홍씨의 발언이 전해진 이튿날 곧바로 대표 명의의 성명을 내어 출판사 쪽이 그동안 북쪽과 저작권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해 온 사실을 밝히고 저작권 당사자와 접촉이 된다면 언제든 계약을 체결할 뜻이 있노라고 했다. 〈황진이〉를 출간한 대훈닷컴 역시, 비록 중국 쪽 대리인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황진이〉의 남한 내 출판권을 위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시급한 문제는 남과 북 사이의 저작권 관련 사항을 관리하고 감독할 절차와 규정을 마련하는 일로 보인다. 다행히도 최근 그런 움직임이 남과 북 양쪽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뚜렷한 징표는 북쪽의 저작권 관리 정부 기구인 저작권처가 지난해 6월 만들어진 것이다. 2003년 4월 저작권 보호 국제기구인 베른협약에 가입한 북한은 작가들의 저작권을 저작권처로 일원화해 남쪽과 협상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남쪽에서는 지난해 초 발족한 민간기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그동안 저작권처를 상대로 저작권 문제를 협의해 왔다. 양쪽은 다음달 초 금강산에서 실무 접촉을 마련해 〈임꺽정〉과 〈황진이〉를 비롯한 북쪽 저작물의 판권 문제를 매듭짓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남북 작가회의’를 추진해 온 민족문학작가회의 역시 북쪽 파트너인 조선작가동맹 소속 문인들의 남한 내 저작권을 대행하기 위한 교섭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여름 이후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남북 작가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회담이 역시 다음달 초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기서 북한 저작권 문제에 관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주목된다.
이처럼 남과 북 사이의 저작권 협상이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홍석중씨의 발언은 다소 당혹스럽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홍씨의 발언이 저작권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북쪽 인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내부용’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만 이 기회에 새삼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있다. 남쪽 출판업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한 홍씨의 말은 옳은 것이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저 80년대 말 ‘북한 바로 알기’ 차원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북한 문학작품들과 역사·철학서 등의 경우를 기억하고 있다. 그 책들은 물론 북쪽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상황에서 북한 ‘원전’을 남쪽에서 출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고초를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상업적인 고려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수십 명의 출판인이 구속을 마다 않고, 남과 북 양쪽에서 두루 ‘불법’으로 찍힌 책들을 펴낸 결과 우리는 북에 대해 그만큼 더 잘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80년대 말 출판인들의 노력과 희생이 오늘날 남과 북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저작권 협상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저작권 협상은 남북 문화 교류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히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남쪽 당사자들 사이의 과도한 경쟁을 비롯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상생이라는 대의를 살리도록 남과 북 모두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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