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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또다른 FTA를 꿈꾸며 / 권태선

등록 2006-07-18 19:41수정 2006-07-18 22:36

아침햇발
〈화〉 등의 저술로 유명한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은 종이 한 장 속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종이 한 장이 만들어지자면 구름·햇살·나무·벌목꾼 등, 온 우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도 흙·바람·햇살·농부 등 온 우주가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잔의 커피를 통해 만나는 농민들은 행복하지 않은 듯하다. 비정부기구 옥스팸이 인터뷰한 우간다 농민 로렌스 세구아는 “여러분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게 바로 우리 문제의 근원이란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피땀 흘려 거둔 원두를 거저 가져가는 꼴이다”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방에서 팔리는 원두커피 1킬로그램의 소비자 가격은 평균 26.4달러(약 2만5천원)이지만 농민들이 받는 가격은 생산비의 60%도 안 되는 14센트(약 130원)에 불과하다.

그 결과 5년 전 커피 일곱 자루만 생산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에티오피아의 모하메드 안드리스는 “지금은 그 네 배를 팔아도 생활이 안 된다. 아이들 셋은 학교를 그만두게 했고, 비료를 사느라 빌린 돈을 갚으려고 소를 팔았다”고 한탄한다.

커피농업의 이런 비참한 현실은 자유무역 체제 아래서 우리 농업이 맞닥뜨린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커피는 몇 안되는, 소농이 주생산자인 국제거래 산품이다. 1헥타르 미만의 소농이 전체의 70%를 생산한다. 그래도 미국이 국제커피협정을 탈퇴한 1989년 전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생산국과 소비국이 협의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협정을 탈퇴해 수급균형이 깨지고 베트남 등이 새로 진입하면서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그렇지만 커피회사들로선 오히려 기회가 됐다. 원두가격을 후려칠 수 있게 된데다 새로운 블렌딩 기술로 싼 원두를 쓸 수 있게 돼 수익이 더 늘었다.

이런 불공정 무역에 대한 대안으로 비정부기구들은 새로운 에프티에이(FTA)를 제안한다. 물론 이 ‘에프티에이’는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대안무역으로 번역되는) 공정무역협정(Fair Trade Agreement)이다. 공정무역운동은 소비자와 협력해 국제 거래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한살림’ 등 생협운동의 국제판이라 할 수 있다. 1940년대 미국에서 푸에르토리코 빈민들의 수공예품을 사준 데서 시작된 이 운동은 지금은 커피·쌀 등 식료품으로 거래 대상을 넓히고 있다. 운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도 높아 2000년 이후엔 해마다 20% 이상 거래가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농민 등 생산자를 지원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고, 거대기업의 윤리문제를 파고들어 기업운영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럽의회도 지난 6일 ‘소비자들의 책임구매를 돕는 공정무역 지원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개도국의 좀더 많은 소규모 생산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의 공공입찰이나 구매정책에도 공정무역 방식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정무역 운동이 싹트고 있다. 이주 노동자 지원단체에서 강제 추방된 이주 노동자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작은 대안무역’을 꾸렸고 ‘아름다운 가게’도 제3세계 수공예품을 판다. ‘아름다운 가게’는 올해 한발짝 더 나가기 위해 네팔 커피를 공정무역 방식으로 직수입해 원두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커피를 취급하는 전문점을 스타벅스처럼 체인화해 국내 공정무역 운동을 본궤도에 올리겠다는 부푼 꿈을 품고서.

그렇다면 각성된 소비자로서 우리는 어떤 ‘에프티에이’를 선택해야 할까?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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