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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1 18:38 수정 : 2005.03.01 18:38

‘국가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라’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취임사는 민주 사회에서 상기시켜야 할 명구다. 최근 한국경제에 관한 기사나 여론을 보면 모든 경제문제는 정부의 무능이나 무관심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만 힐책하고 있다. 경제는 정부정책뿐 아니라 기업, 노동 등 여러 요소들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운영된다. 이런 경제요소들의 기본이 되는 개인으로서 내가 경제를 위하여 잘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겠다.

문화, 즉 우리의 의식구조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론이다. 역사적으로 문화가 다른 민족들의 경제발전이 상이했던 것, 또 미국에서 문화가 다른 여러 민족들의 경제수준이 차이가 나는 것만 보아도 문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경제는 사고 팔고 하는 무수히 많은 거래로 형성된다. 따라서 경제가 운영되어 가는 데는 거래비용이 생긴다.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정보를 모으고, 흥정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거래비용이 적으면 거래가 많고 활성화되어 경제가 부흥한다.

거래비용은 그 사회의 문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인간관계에서 신뢰성과 유대감이 높으면 거래비용이 덜 드는 것은 남대문 상가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또 우리의 윤리기강과 준법정신이 높으면 계약과 그 시행이 순조로워 거래비용이 낮아진다. 신뢰성, 유대감, 윤리, 준법정신 등은 모두 문화의 요소들로서 최근 학계에서는 사회적 자본으로 불린다.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은 국민 개개인의 창의력이 향상될 때 가능하다. 우리의 창의력은 우리의 의식구조가 미래지향적인지, 사물을 판단하는 데 이성적인지, 또 개개인의 능력을 자유로이 발휘할 수 있도록 정의와 평등의식을 갖고 경쟁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들이 다 문화의 측면들이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의식구조는 경제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국민의식이 전통적인 단체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바뀌면서 유교적 사회유대가 느슨해지고 시민협동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직장에서는 해고가 가능하고, 종신고용, 연공서열 같은 제도가 없어지면서 노사 간에 신뢰성이 줄어들고, 정치 또한 타협할 줄 모르는 정쟁과 대립으로 국민 사이의 유대감과 신뢰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이혼율은 신뢰의 바탕인 가정에서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아울러 정객들의 큰 부정부패 사건, 이기집단들의 불법행위 등은 윤리기강과 준법정신을 해이하게 만들고 있다. 사회의 신뢰·윤리·준법정신 등은 어떤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악의 순환을 한다. 깨끗한 공원에서 쓰레기가 하나 떨어지면 치우려 하지만, 지저분한 곳에서는 자기도 쓰레기를 버리는 이치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미래지향적인 의식구조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정치·정책적인 불확실성과 비일관성이 미래를 보는 시야를 짧게 하여 국민의 저축률과 투자율은 떨어지고,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인구노쇠화는 경제잠재력을 둔화시키고 있다. 아직도 ‘까마귀가 정력에 좋단다’ 하면 따라가는 군중심리가 이성적인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출신대학에 따라 차별이 엄존하다 보니 좋다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과외수업과 객관식 문제풀이가 창의력 개발보다 중시되고, 심지어 국가가 주관하는 수능시험에까지 부정이 판을 치니, 창의력은 물론, 앞날의 국민윤리가 걱정스럽다.

우리 경제는 그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각자에게 신뢰성 있는 행위를 주문하고 있으며, 높은 윤리·준법정신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오율/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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