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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우드스탁 / 곽병찬

등록 2006-08-01 19:54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유레카
1968년 1월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남 인민전선의 구정 공세는 베트남전 승리에 대한 미국인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사이공의 대사관마저 24시간 동안 적의 수중에 넘겨줘야 했다. 반전·평화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계속되는 전쟁과 인종 차별, 권력의 억압과 문명의 비인간화는 젊은이들을 절망케 했다. 이들은 한편에선 억압에 저항하며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펼쳤고, 다른 한편에선 일탈과 퇴행에 빠졌다. 이런 억압과 저항, 그리고 일탈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이 ‘우드스탁 음악예술축제 1969’였다.

‘사흘간의 평화와 음악’을 주제로 8월15일부터 3박4일 동안 열린 이 축제에는 무려 45만여명이 참석해 장대비 속에서 반전·평화를 외치고, 사랑과 자유를 노래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조롱했고, 재니스 조플린, 더 후,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은 강렬한 비트로 저항을 선동했다. 포크의 여왕 조앤 바에즈, 인도 음악의 전설 라비 샹카르도 참여했지만 우드스탁을 이끈 것은 록이었다.

우드스탁 이후 록 페스티벌이 유행했다. 그러나 저항정신이 약화하면서 페스티벌은 자극과 환각을 추구하게 됐다. 록은 물질적 풍요와 일탈에 빠져들고, 로커는 약물에 찌들기 일쑤였다. 30돌인 1999년 우드스탁의 부활을 꿈꾸는 무대가 마련됐지만 폭력과 성추행 등으로 난장판이 됐다.

인천 송도유원지에서 ‘2006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장대비 속에서도 3만여명이 몰렸고 2000여명이 2박3일을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다고 한다. 첫단추는 그런대로 잘 끼웠다. 그러나 저항과 창조, 공동체와 평화 등 록의 정신을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록이 그 정신을 잃으면 소음이 되고, 페스티벌은 시장 좌판이 된다. 우드스탁 축제는 당국의 거부로 뉴욕주 우드스탁 인근의 베델에서 열렸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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