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100쌍 중 31쌍이 외국인 여자와 결혼하는 사회가 있다. 얼마 전 영국 브리스틀대학에서 열린 동아시아 사회정책 학술대회에서 대만의 국립치난대학 쉐우 교수가 발표한 대만의 국제결혼 통계이다. 쉐우 교수의 논문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해 온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경제·사회적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대만의 국제결혼 건수는 1998년만 해도 14.1%에 불과했으나 5년 만인 2003년에 31.4%로 급증했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31.4%라는 국제결혼 건수가 좀 과장된 의미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결혼이 2000년에 3.7%에서 2005년에 13.6%로 급증했다. 한국의 농어촌 지역 국제결혼 비중은 이미 35%를 넘어섰다. 두 나라는 매우 유사한 인구변동을 겪고 있어 한국도 머지않아 대만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2005년 대만의 출산율이 1.18, 한국이 1.08이었다. 대만과 한국 여성의 평균 결혼나이도 각각 27.2살과 27.7살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대만에서 국제결혼의 비중이 커지면서 어머니, 그리고 부인으로서의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문제도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신부가 도망가면 다른 신부로 보상해 드립니다’, 심지어는 ‘일년간 무상 보증’이란 표현조차도 일부 상업적 결혼중개업소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인종·성·인권 차별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동남아에서 대만으로 이주해 온 신부들의 나이가 매우 젊어 남편과 평균 12살의 차이가 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가부장제 가족 문화, 직업상의 차별,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어린이의 교육과 성장환경도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어린이가 2003년에 2만8666명으로 대만 전체 신생아 수의 13.4%를 차지하였다. 대만 신생아 7명 중 1명이 외국인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중국어를 읽고 쓰기 어려운 동남아 신부들은 ‘좋은 엄마’의 노릇을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국인 어머니를 둔 어린이들 역시 학교에서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국제결혼에서 파생되는 더욱 큰 사회문제는 성인이 되어 대만으로 결혼해 온 여성들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태어난 2세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될 구조적 차별이라고 또다른 대만 교수는 단언하고 있다.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온 아시아 여성과 그 후손들인 ‘코시안’들이 겪는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극도로 낮은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한 가족과 그 후손들이 겪는 고통이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올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인종이 결합된 가족을 정상적인 가족형태로 받아들인 경험이 없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토론해 본 적도 없다.
다인종·다문화 사회에 대비하여 우선 급한 것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인간의 삶의 형태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대학에서는 ‘다양성’이란 과목이 교양과목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고, 학부에 따라서는 필수과목으로 강의되고 있다. 현실이야 어떻든 ‘인종 차별적 언어 구사’가 가장 비난받고 엄중한 사회적 제재를 받는다는 인식이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규범이 된 것이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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