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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병원 파업과 의료 공공성의 관계 / 하종강

등록 2006-08-21 20:57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위원으로 병원 노사교섭 조정사건에 참여한 적이 있다. 마라톤 회의가 이어지다가 잠깐 휴식시간이 있었는데 마침 노조 간부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자, 병원 쪽 교섭 대표를 맡았던 대학병원장이 여담처럼 말한다.

“나도 병 고치는 의사입니다. 그런데 병원 주차장 경영해서 수익을 남겨야 하는 걱정까지 해야 하니, 이거야 원 …! 지난해 교섭 끝난 뒤 무능한 원장이라고 퇴출된 동료 의사들도 많습니다.” 그 말을 나도 농담처럼 웃으며 받았다. “그렇게 살기 싫으시면 노동조합 요구대로 하십시오.”

내가 어쭙잖게나마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라고 치자. 내가 만일 노동운동을 빙자해서 큰돈을 벌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사람들은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노동운동보다 몇 배나 숭고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숭고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큰돈 버는 일을 계속 용납해주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영국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면서 돈 벌 궁리까지 해야 하는 병원이 전체의 5%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의료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의 병상 기준 공공의료 비율이 영국 95%, 프랑스 64.8%, 독일 48.5%, 우리나라와 비슷한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 35.8%, ‘민간보험의 천국’이라는 미국 32.2%인데, 우리나라는 18.5%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의료 비율이 30%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다.

몇 해 전 보건복지부의 공공 보건의료기관 의료진 현황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의료 인력들 중에서 공공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비율이 의사는 9%, 간호사는 8.5%, 그 밖의 의료인은 5.8%로 공공기관 종사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 보건의료 체계는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나라들이나 개발도상국들보다 공공성이 취약하다.

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언론의 보도는 의료 공백 발생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태도는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뿐,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원인을 의료 체계나 의료 환경과 같은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백의의 천사’가 꿈이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많은 노동자들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노동을 시킴으로써 최고의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병원 경영 시스템이 병원 직원들로 하여금 환자와 보호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악조건을 노동자 개인의 인격적 완성에 의지해 친절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병원 노조가 파업을 할 때마다 ‘공공의료 확보’를 중요한 요구사항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종합병원 원장이 “병원은 이제 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야”라고 한탄조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과거 우리 사회의 병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는 뜻이다.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극에 가까운 일이다.

존경받는 의사들에 대한 공연한 억하심정이라고 오해할까봐 한마디 덧붙이면, 우리 할아버지도 의사셨다. 일가친척들 중에 의사 일을 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어린 시절에는 나중에 자라면 당연히 의사가 될 줄 알았다. 의사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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