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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3 20:38 수정 : 2005.03.03 20:38

수업 중에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느라 강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학생들을 보고, 나는 처음에는 경악했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이제는 꾸중하는 것도 포기하셨다는 다른 교수님들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른바 ‘문자질’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 앞에 다가선 나를 보고서도 계속 휴대전화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는, 정말이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다음 학기에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엄금’임을 수업 시작 전부터 전자게시판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이를 어기는 학생에게 불이익이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휴대전화 사용을 둘러싼 학생들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었다.

휴대전화는 급할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누군가 항의해 온다면, 나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휴대전화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적어도 강의를 주고받는 시간 동안, 학생들도 또 강의를 진행하는 사람도, 강의 그 자체를 위해서 일정 장소에 모인다. 대학이 학점이나 따기 위해서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곳이라면, 혹 가르치는 사람 역시 시간이나 적당히 채우기 위해 와야 하는 곳이라면, 이미 그 강의의 성과는 보나마나다. 강의를 진행하는 주체는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을 통해 일정한 결과물이 전달되고, 그에 따른 파급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청출어람하기를 바란다. 이런 기대는 전혀 무시하고 문자 주고받기나 절실한 학생이라면, 수업 분위기 망치는 망둥이 노릇을 하려고 굳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도구를 사용할 때 누가, 왜 도구의 주체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도구는 능수능란하게, 그러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그래서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원들 간에 마찰이나 긴장감이 없도록 사용되어야 진정 편리한 도구라 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되 예의에 맞게 사용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절반은 실패한 도구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아닌가? 우리 스스로가 아니면 누가 휴대전화 예절에 대하여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밥 한 술 먹는 와중에도 왜 ‘에티켓’이란 프랑스말을 들먹이게 되는지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루이 14세 당시 궁중에서부터 본격화된 이 덕목은, 실은 각종 예식에 관한 규범 조례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의식 절차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각종 생활 예절까지 관장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그 뿐인가? 이 정신은 문화를 갈구하는 숱한 타민족에게 파급되어, 21세기인 지금 사라지기는커녕 그 입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그 결과,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를 가더라도 ‘에티켓’이라는 말이 자기네 말로 발음되고 있음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에티켓’이라는 산물이, 프랑스 국민들의 문화적 자신감을 얼마나 북돋워 줄 수 있을지 한번 상상이라도 해 보자.

기술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문화란 더더욱 피켓 들고서 무슨 ‘운동’ 한번 한다고 갑자기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기술적 자부심은 그 한 가지만으로는 오히려 위태로울 수도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좀더 주체적인 사용자가 될 때, 적어도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사용할 줄 알아야, 우리는 진정한 휴대전화 종주국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음식점에서 왼손에 칼을 쥔 것이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흉 볼 일인가? 이보다는 한국 최고의 학부를 다니는 대학생이나 되어서도 수업 시간에 문자나 주고 받는 것이, 백배는 더 부끄러운 일 아닌가?

변지원/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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