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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한국노총과 경총의 부적절한 합의 / 강성태

등록 2006-09-05 19:23

강성태 한양대 법대 교수
강성태 한양대 법대 교수
기고
며칠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급여’ 문제에 대해 현재 상태를 5년간 더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를 정부가 수용한다면 앞으로 5년 동안도 지금처럼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은 금지되는 대신 노조 간부는 사용자로부터 계속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지난 3년간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을 둘러싸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해 온 노사가 로드맵 중 가장 예민한 사안에 대해 합의를 하였다는 사실은 속내를 잘 모르는 국민들로서는 박수를 칠 만한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노사관계나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합의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권리, 즉 단결권은 근로자의 권리 중에도 으뜸이다. 그리고 단결권의 중심에 단결선택권이라는 것이 있다. 근로자가 자신이 원하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기존 노동조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권리가 그것이다. 이 단결선택권의 다른 이름이 곧 복수노조 허용이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 등 여러 국제기구도 지난 15년간 줄곧 우리나라의 노동인권 개선의 핵심 사항으로 복수노조 허용을 권고하여왔다. 이런 마당에 복수노조 금지를 계속 유지하자는 것은 국내적으로는 인권보장을 포기하거나 법치를 하지 말자는 것이며, 국제적으로는 노동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후대에도 물려주자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애초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급여 문제를 연결한 것은 사용자 쪽의 ‘입법 상술’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본래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수노조 허용은 국가로서도 배제할 권한이 없는 기본적 인권에 속하는 반면, 전임자 급여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거나 백보양보해도 국가가 재량적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노동조합도 이제는 사용자 쪽의 입법 상술에서 벗어나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급여 문제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사실 복수노조 허용은 기성 거대 노동조합으로서는 반드시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도리어 거대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일반 근로자들, 즉 수는 많지만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다수의 근로자’에게 속하고 또 필요한 권리이다. 반면에 전임자 급여 지급은 기성 노동조합들 특히 노조 간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자신들의 안정적인 조합활동과 지위를 보장해 주는 든든한 재정적 안전판이다.

또한 많은 사용자들로서도 결코 밑질 것이 없는 거래다. 전임자 급여라는 최소한의 지출을 통해 노사관계의 안정이라는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올 봄의 한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사용자들이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에 찬성하지 않았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번 한국노총과 경총의 합의는 결국 일반 근로자의 기본적 인권을 팔아 노조 간부의 급여를 챙긴 꼴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결코 수용해서는 안 된다. 로드맵의 입법화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가장 큰 장애물을 노사가 스스로 제거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적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 전형이 될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로드맵의 핵심 중 핵심이다. 만약 이런 핵심을 배제한다면 로드맵은 이미 생명을 잃은 것이다. 구시대 노동탄압의 상징이며 노동인권을 껍데기로 만들고 있는 복수노조 금지를 그대로 둔 채 어떻게 선진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강성태 한양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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