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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아직도 먼 식약청 / 김상종

등록 2006-09-06 18:30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식품 기준을 초과하는 다량의 중금속으로 농산물이 오염되어 있지만 건강에는 괜찮다. 식약청의 해석이다. 전국 44곳의 폐광지역에서 생산된 쌀, 배추, 감자, 파, 대두, 팥과 같은 다양한 농산물이 국제식품규격위원회가 정한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과 카드뮴에 오염된 사실에 소비자를 안심시키려는 설명이다. 비록 기준치를 초과했지만 장기간 먹어야 중독현상이 나타나고, 오염된 쌀의 생산량이 적어서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논리다.

이미 5년 전 중금속에 오염된 쌀 41.7톤을 생산한 폐광지역에서 올해 170톤이나 생산되고 있고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쌀 170톤이라면 가정용 20킬로그램 포장으로 8500개에 이른다. 오염된 쌀이나 다른 농산물이 통제되지 않은 채 약 1만 가구에서 소비된다는 얘기다. 국가가 농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농사를 포기토록 하였어야 하나 오염된 농산물이 누구에게 소비되었는지조차 파악을 못한다는 사실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은 포기하였다는 의미다.

식약청의 ‘카드뮴에 최고로 오염된 쌀(3.51ppm)로 지은 밥을 매일 23.8㎏씩 1년 이상을 먹어야 단백뇨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정도’라는 해석은 건강한 사람이 단백뇨라는 특정 질병을 나타낼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실제 위험도는 식약청의 평가보다 훨씬 크다. 미국·캐나다·유럽 등의 환경, 식품안전 및 건강 위해성 평가조사에서 일반인의 ‘평균 1일 섭취량이 1~20마이크로그램(1그램의 백만분의 1)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번 조사에서 최고로 오염된 쌀의 경우에 하루 5g만 섭취해도 평균 1일 섭취량을 초과할 수 있다. 즉, 밥 반 숟가락 정도만 먹어도 초과하게 된다. 같은 양의 중금속이라도 위해도는 어린이나 노인, 환자에 따라 다르다.

물론 식약청은 오염된 농산물 생산량이 적어서 평생 먹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카드뮴과 납 같은 중금속은 일단 체내에 들어오면 배출이 어려우므로 농축되어 중독 증상을 일으키거나 다른 경로에서 유래한 유해물질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식약청 판정과는 다르게 중금속에 오염된 농산물을 먹어도 안전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전체 국민과 해당 지역 주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보건, 환경, 그리고 농업 등을 주관하는 부서가 나서서 오염 농산물의 경로를 조사하고 환경, 식품, 건강에 대한 종합적인 위해성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환경오염의 피해는 면역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먼저 받는다. 미국은 이들 건강상 약자를 배려한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미국 환경청은 수돗물의 바이러스 오염에 의한 수인성 질병 확산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수도법을 강화하면서 전체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면역력이 약한 민감한 집단’ 보호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였다. 유아, 임산부와 모유를 먹이는 엄마, 65살 이상 노인, 노인복지 시설 등의 집단 거주자, 만성질환자, 암환자, 장기이식자 등으로 분류된 이 민감한 집단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니 2001년 기준 약 855만명,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였다.

면역력이 취약한 건강상 약자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건강상 약자의 수는 앞으로 더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보건·환경 정책이 건강한 성인 중심에서 벗어나 우선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건강상으로 민감한 다수 국민을 기준으로 하는 정책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 변화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시해 보자.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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