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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그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등록 2006-09-15 20:17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이데올로기의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정형화된 사유체계와 미래 전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나 신보수주의 흉내를 내지만 그런 틀로도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 미숙아 괴물이다. 그러나 전임 국방장관과 군 장성, 외교부 장차관, 경찰청장 출신들, 주요 언론, 경제계, 교수 수백명이 이끌고 있으니 힘은 세다. 미숙아가 힘 센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언론은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통칭한다. 진보세력과 맞세우기 위한 것이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기치란 게 ‘반미·반시장·반기업 반대’ 정도이니, 그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멋대로 변한다. 시장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정부의 규제와 개입을 철저히 거부하는 점에선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자유경쟁을 왜곡시키는 대기업 독점체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까지 거부한다는 점에서 거리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제한적인 평등 및 사회복지 정책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려 하지만, 이들은 오로지 성장 일변도다.

역시 비슷해 보이는 신보수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함께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의무, 그리고 종교적 도덕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크지 않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은 뉴딜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신보수주의의 영웅이라고 추앙했지만, 이들에겐 거부해야 할 사회주의 정책일 뿐이다. 사고 수준이 1930년대 미국의 정통 보수주의자에 머문다.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후 등장한 시민계급에 대항해 태동했던 고전적 보수주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곧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이들은 이마저도 외면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에 뿌리내린 미국의 보수주의처럼 자유와 인권의 가치도 중시하지 않는다. 인권은 언제든 유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본의 보수우익처럼 군사적 자주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이 자랑하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천황제를 통한 만세일계와 군사주권 회복을 주장하면서 할복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에 대한 군사적 예속을 주장한다. 서구 보수주의의 상징인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나치 부역자들을 처단했지만, 이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한다. 정한론의 후예들과 가깝다.

보수주의는 특정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회변화에 맞서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대응 방식으로 출현한다. 때문에 이데올로기로서 체제와 규범을 갖추기 어렵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운 것이 신보수주의다. 크리스톨은 그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성장과 함께 복지국가 실현을 추구하며, 효율성만 앞세우지 않고 도덕적 규범적인 면을 중시한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주의자가 귀담아들어야 할 것들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철학체계나 규범, 그리고 비전이 없다보니 그저 정권쟁취 운동뿐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경쟁 속에서 건강해지고 발전한다. 철학과 규범을 갖춘 보수주의자의 등장은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통제와 자유방임, 민족주의와 사대주의 혹은 세계주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자유의 가치나 도덕성 어디에도 충실하지 못하며, 강자에의 굴종과 약자에 대한 군림,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이들을 국가발전의 파트너로서 (신)보수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유신체제에 관변학자들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였으니, 이들을 ‘한국적 보수주의’라고 하면 모르겠다. 대개 박정희 신도들이니, 환영할 법하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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