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계절 가을이라지만 9월은 마음이 고달프고 바쁘다. 박정희 정부 시절 ‘남단녹지’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금지하였던 판교 일대 280여만평이 30년 만에 수도권 택지난 해소라는 이름 아래 고가의 중대형 아파트 분양지로 변신했다. 각 대학들의 2학기 수시모집도 한창이다. 집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마음이 고단하고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걱정반 기대반으로 마음만 바쁘다. 여기에 정기국회니 국정감사니 크고작은 정치일정과 바다이야기 파문, 헌법재판소장의 청문회 파행과 지방건설업체의 일감 부족 소식 등이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헌재소장 지명자의 국회청문회가 왜 파행을 겪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일이 꼬여 사행성 도박장이 일상공간에까지 침투해 왔는지 등을 따져 묻고 밝히는 것은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보통의 국민들이라면 그런 짜증나는 풍경보다는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가족의 단란과 평화를 꿈꾸는 내집 마련과 자녀의 대학 입시가 훨씬 더 중차대한 일상의 고민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깨알 같은 글자와 숫자로 신문지보다 넓은 지면을 앞뒤로 꽉 채운 입주자 모집 안내서나 40쪽에 이르는 판교 아파트 분양 팸플릿 어디를 찾아보아도 주거단지의 건폐율이나 용적률과 같은 중요한 주택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중요하달 수 있는 환경 정보이자 풍요로운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단지 안의 녹지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또 그 안에는 어떤 나무가 심어지는지 등의 생태환경에 대한 정보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다. 주택분양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주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을 정부나 주택을 지어 파는 업체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연일 주택분양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몰리니 사뭇 이상하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서울대가 제출했다는 ‘서울대 2006학년도 입학생 출신지역, 고교별 합격자 현황’의 보도가 그것이다. 언론은, 전국 2천여개 고등학교 가운데 올 봄에 서울대에 1명 이상을 합격시켰다는 전국의 고등학교 815곳 모두를 입학생 배출 순위별로 나누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고교 평준화 이전에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던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고교등급화를 방지하고 전인교육을 한다는 취지에서 채택한 고교평준화 제도의 시선으로 보자면 굳이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행정법원의 판결대로 등급화와 서열화, 그리고 불균형과 차별을 해소할 방안을 찾는 연구자료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모든 이에게 굳이 떠벌여 알려야 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교개발의 주체가 누구이건 정부가 추진한 일이다. 그러니 정부는 개발주체인 정부투자기관이나 일선 주택건설업체들로 하여금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올바로 가려 알려주도록 했어야 옳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이나 시대의 정론을 외친다는 언론매체의 선전문구는 국민 대다수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공하고 그들의 판단과 움직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로 한정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의 신입생 출신고교 정보 공개는 몰라도 될 것을 억지로 알게 한 것이다. 올바른 주거환경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안내서나 팸플릿은 의미없는 종이일 뿐이며, 구호와는 달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언론이라면 그들이 부르짖는 정론과도 사뭇 거리가 멀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화려함 뒤에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을 가리지 못하는 무책임한 과잉정보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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