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은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말이다. 이 말이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뜻이 새로 생겼다. 게다가 ‘안면박대, 안면부지, 안면치레’ 등의 복합어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면’이 들어간 복합어이면서 사전에 오르지 않은 낱말로 ‘안면몰수’(顔面沒收)가 있다.
“이건 참으로 문자 그대로 안면몰수라는 것이로구나.”(이청준 <예언자>)
“김장식이가 안면몰수하고 정면으로 노려보며 거친 소리로 맞대매를 했다.”(송기숙 <녹두장군>)
“오다가 동네 점방 앞에서 아는 얼굴을 덜컥 만나서 안면몰수하고 널금 저수지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어 봤지 뭐여.”(윤흥길 <완장>)
‘몰수’는 범죄 행위에 제공한 물건이나 그 결과로 얻은 물건 따위를 관청 등에서 강제로 빼앗는 일을 가리키는 ‘법률용어’지만 ‘안면몰수’에서 ‘몰수’는 ‘아주 없던 것으로 함, 또는 완전히 무시함’이란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안면몰수’는 부정적인 문맥에서 그동안 쌓았던 친분을 완전히 무시함을 나타낸다. ‘안면박대’는 ‘안면몰수’처럼 친분을 깡그리 무시하지는 않고, ‘푸대접함’ 정도로 쓰인다. 비슷한 뜻으로 ‘체면몰수’도 이따금 쓰인다. 우리말의 조어력도 한자말에 못지 않다. ‘낯을 익히다, 낯이 설다, 낯이 없다, 낯이 두껍다, 낯을 가리다, 낯을 모르다 …’들도 토씨가 떨어지고 앞뒷말이 합쳐져 온전한 낱말로 쓰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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