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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노동자 권리와 역사의 순리 / 하종강

등록 2006-09-18 18:28수정 2006-09-18 22:08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두고 이야기할 때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시행하거나 아니면 두 가지 모두 시행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조처인 것처럼 여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과 한국노총이 두 가지를 모두 5년 뒤에 시행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나 뒤이어 이뤄진 노·사·정 5자 합의에서도 두 가지 모두 3년 뒤에 시행하기로 합의한 것도 아마 그런 인식에 바탕을 뒀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둘 중의 어느 한 가지만 먼저 시행하면 안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단위 사업장의 복수노조 설립은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은 계속 지급하도록 하면 안 되는 것일까? 글쓰는 이가 보기에는 그렇게 법제화하는 것이 오히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노동법의 표준 곧 국제기준에 가깝다.

지난 7월에 의사 노조가 설립됐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의사들도 자신을 노동자라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얼마 전에는 은행 지점장급 이상 직원들만 가입하는 지점장 노조도 설립됐다. 은행 지점장들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일일지 모르겠으나, 장관이나 대사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유럽 선진국 견지에서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벌어지는 이러한 현상들은 선진국을 수십 년 뒤늦게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교사 노동조합이 생긴 지 수십 년 지난 뒤에야 우리나라에 전교조가 설립됐고, 다른 나라에 공무원 노동조합이 생긴 지 수십 년 지난 뒤에야 우리나라에 공무원노조가 설립됐다. 선진국에서는 하청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회사가 응하도록 제도화한 지 벌써 수십 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포항의 건설 노동자들이 “원청회사가 단체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하면서 포스코 본사를 ‘불법 점거’하고 나서야 원청회사의 단체교섭 응락 의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권리에 관한 한 이렇게 선진국보다 수십 년이나 뒤처진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설립하는 과정이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군사독재 30년이라는 이상한 역사를 거쳤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의 계획과 전혀 무관하게 일제 식민지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하루아침에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되는 바람에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는 신분제도를 스스로 무너뜨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지금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강조하며 “과거사 규명이 필요하다”는 글을 썼더니 “노동문제연구소장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킬 생각은 안 하고 한가하게 역사나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반론에 동감하는 것이 슬픈 우리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삼권이 점차 확대되는 것은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가 점차 확대돼 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역사의 순리는 무섭다. 1600여 명의 교사를 해직하고도 전교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나 수백 명의 공무원들을 파면·해임하고도 공무원 노조 설립을 막지 못한 것도 그것이 역사의 순리였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새 방안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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