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국민연금 개혁의 초점이 기초연금제로 모아지고 있다. 명칭이 ‘기초노령연금’이건 ‘기초연금’이건 기초연금의 수준과 기능에 따라 보험료율과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연동될 전망이다. 원론적으로 기초연금은 시민권을 갖고 있거나 일정 기간의 거주기록이 있으면 조세 등의 공적재원에서 최소한의 노후 생계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물론 일본처럼 장기간 보험료를 내야 기초연금을 주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일본 같은 사회보험 방식의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없다.
국가가 보험료 납부와 무관하게 모든 노인에게 최소한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면 대한민국 5천년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대사건’으로 기록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적은 액수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국민연금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 현세대 노인들도 최소한의 노후 생계비를 받게 된다. 또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속한 상당수의 비정규직 근로자나 전업주부도 최소한의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시민단체, 노동계, 여성계, 학계, 그리고 야당 등에서 기초연금제를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이유다.
문제는 돈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시행 초기에만 수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기초 노령연금을 가장 ‘어설픈’ 형태의 기초연금으로 이해해도 당장 2조7천억원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기초연금을 시행하려면 적어도 2배 정도는 들 것이다. 기초연금의 재원을 세금으로만 충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부의 주장처럼 기초연금의 도입은 가까운 장래에 현실화되기 어려운 무책임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막대한 규모로 축적되는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면 기초연금제는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2005년 국내총생산(GDP)의 2.3%에 해당되는 18조5435억원이 국민연금 보험료로 걷혔다. 이 중 4분의 1 혹은 3분의 1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돌린다면 대략 4조6천억원에서 6조원 이상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곧, 정부 재정에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보태면 기초연금은 실행 가능한 대안이 된다. 물론 이 제안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많은 이론적 논쟁 지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근거는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적절히 ‘소비’하지 않으면 기금규모가 너무 커져 자본시장 왜곡, ‘연기금 사회주의’ 등 여러 경제적 부작용을 가져올 개연성이 높다. 이미 국민연금기금은 국내총생산의 20%에 가깝다. 또한 우리나라 채권발행 총액의 18%를 갖고 있다. 복지부 안대로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수준을 인하할 경우 2054년에 국내총생산의 83.3%에 이르는 연금기금이 적립된다. 수십년 앞을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적립규모다.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써도 나머지 적립기금으로 ‘사회적 투자 자본’ 구실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은행이 공적연금의 재정운용을 부과방식의 1층과 적립방식의 2층으로 나눌 것을 권고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위험분산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돌리자는 것은 재정운용을 부분적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의미한다. 대규모의 적립금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보다는 연금재정을 부과방식과 적립방식으로 나누는 것이 경제적 불확실성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임은 틀림없다. 2060년이나 2070년까지 대규모 연금적립금의 가치를 상당부분 훼손시키는 경제적 충격이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두둑한 배짱이 아닌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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