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열린 4차 예비투표에서 찬성 14표, 기권 1표를 얻어 사실상 유엔 사무총장에 내정되었다. 이제 안보리의 공식적인 후보자 추천과 유엔총회 인준 절차만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반 장관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기쁨이요 축복이라 하겠다.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이번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은 한국 외교의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 준 기념비적 쾌거라 하겠다. 반 장관 개인의 역량과 매력도 작용했지만, 5개 상임이사국을 대상으로 한 강대국 외교, 전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한 다변화 외교, 그리고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고양시켜 온 문화 외교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한국 사회 전체가 한목소리로 반 장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양극화 구도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렇다. 아무튼 이번 쾌거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유엔의 행정 책임자이자 지구촌의 수장으로서 반 사무총장의 책임과 의무는 무겁다. 대량살상무기, 국제 테러, 평화 유지, 군비 축소, 저개발국의 저개발과 빈곤 타파, 인간안보의 증진 등 인류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현안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엔의 개혁이다. 이미 선진국 일부에서는 ‘유엔 무용론’ 또는 ‘유엔 대체론’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유엔에 기대느니 아예 유엔을 없애거나 ‘민주주의 연합체’를 새로 만들어 유엔을 대체하자는 주장들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과감한 유엔 내부 개혁을 통해 이러한 주장들을 불식시키고 21세기 유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를 둘러싼 권력구조 개편, 회원국들의 고질적 무임승차 척결, 그리고 유엔 사무국의 기능과 역할 강화 등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반 장관은 유엔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반 장관은 아시아 지분으로 선출되었다. 그런 만큼 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의 부상을 둘러싼 이 지역의 구조적 불안정, 배타적 민족주의의 확산과 정체성의 충돌, 그리고 빈곤, 저개발, 인간 안보의 비극적 현실 등 오늘날 아시아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 장관은 유엔 차원에서 이러한 현안들을 주요 어젠다로 설정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반 장관은 이제 좀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공헌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반 장관이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유엔 차원에서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에 대한 재검토와 새로운 평화체제의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 문제를 포함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전환시키는 데도 유엔이 좀더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반 장관의 쾌거를 거듭 축하한다. 그리고 반 장관이 역사에 남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 주자. 반 장관의 성공은 우리 모두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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