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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분단이 빼앗은 노동자 권리 / 하종강

등록 2006-10-11 18:29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객원논설위원칼럼
한여름 가뭄이 들었을 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언론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저버린 이기주의적 행태로 질타했다. “가뭄에 연대파업, 경제 최대 고비”, “농토가 타는데 파업이 절박한가”, “엎친 가뭄에 덮치는 파업” 따위의 제목들이 신문을 장식했다. 그 한결같은 보도 행태는 기업과 언론 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장난이거나 아니면 우리 언론의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가 얕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사회 구성원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국민 여론’인 양 포장됐다.

북쪽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일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핵폭탄이 터지는데 무슨 파업이냐고, 또 난리 나겠군.” 신문을 장식할 기사 제목들도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핵 위기에 총파업, 경제 최대 고비’, ‘핵폭탄이 터지는데 파업이 절박한가’, ‘엎친 핵 위기에 덮치는 파업’ ….

일제에 강점당했던 ‘식민’의 뼈아픈 경험과 함께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왜곡한 중요한 체험은 ‘분단’이다. 후진국에서조차 일찍이 확보된 기본권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남침의 위협’이라는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오랜 세월 유린당했다. 노동 기본권을 가로막아 온 면죄부는 이를테면 ‘철도 노동자들 파업으로 기차가 멈추고 공무원들까지 파업을 해서 행정기관이 모두 마비됐을 때, 북쪽에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위협이었다. 분단 상황과 전쟁의 위험을 몇 배나 과장함으로써 기본권을 박탈했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유린당한 만큼 반대급부로 잇속을 챙겨온 사람들이 줄곧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나 ‘진보’는 식민지와 분단의 경험으로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그 과정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저항하여 수구세력은 ‘개혁’이나 ‘진보’를 ‘철부지들의 성급한 희망’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 정도로 평가절하하면서 자신들의 수구적 경향을 ‘본래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일’로 엉뚱하게 미화한다. 자신들이 ‘건전한 보수’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보수적 경제 이념의 원조인 국제 금융자본이 한국 땅에 들어와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많으니 줄이라’거나, ‘기업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거나, ‘재벌을 개혁하라’는 ‘진보적’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희극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 자본의 행태가 얼마나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웅변으로 보여주는 일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로,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1.4%다. 스웨덴 81.1%, 핀란드 76.2%, 덴마크 74.4%, 오스트리아 36.5%, 독일 25.0%, 일본 21.5%, 하위 그룹에 속하는 미국이 12.8%이다. 프랑스가 9.7%로 우리보다 낮지만 프랑스는 단체협약 적용률이 9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단체협약 적용률이 12.5%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사회 전체가 인정하고 있어서 파업이 벌어지면 비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의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참여한다.

노동조합 가입률을 높이고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은, 북쪽이 핵실험을 했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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