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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빈곤과 영아살해 / 김회승

등록 2006-10-15 22:52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산업화 초기인 18세기 영국 사회에선 각종 강력 범죄가 들끓었다. 당시 법정에서 유·무죄 다툼이 가장 많았던 게 영아살해 사건이었다. 피고인 대부분이 사산이나 출산 중 사고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려 했다는 증거로 아기옷을 제출하거나, 산파를 매수해 거짓 증언을 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 영아살해는 여성들이 저지르는 살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잦았다. 영국법은 출산을 은닉한 사실만으로도 사형에 처할 만큼 엄격했지만,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탓에 실제 유죄 판결은 그리 많지 않았다.(이태숙 경희대 교수)

영아살해범으로 기소된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 계층의 미혼모, 그중에서도 하녀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영국 범죄사를 다룬 연구들은, 이들이 대부분 해고 등 경제적 어려움을 피하려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다가 끝내 살인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일을 쉴 수 없는 처지라 완벽한 은닉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이들의 기소율이 높은 이유로 추정한다. 당시 법정 기록에는 피고인들이 임신 중에 몸매 변화를 감추고 피로의 기미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 최대한 신속하게 출산을 한 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방법 등 ‘완전 범죄’를 꾀한 과정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일반인의 법 감정과 달리,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아살해죄는 보통의 살인죄보다 형량이 가볍다. 다만 성폭행 등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 출산 전후의 정신적 상태 등 ‘참작할 만한 동기’가 입증돼야 한다.

서울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이 아이들의 엄마인 프랑스인 여성의 엽기적인 살인 행위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임신 중 살해 충동을 느꼈고, 무려 세 명의 아이를 출산 직후 목졸라 숨지게 했다고 자백했다. 빈곤과 궁핍 때문에 ‘비정한 살인’으로 내몰린 영국 하녀들과는 다르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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