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시키려다 보니, 끊임없는 사회적인 갈등과 이로 인해 장묘시설의 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장묘문화 전반에 변화를 시도해보자.
한국 사회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통적인 장묘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2005년은 한국의 장례문화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로, 화장률이 52%로 급증하면서 매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장묘문화는 매장이 아니라 화장이 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매장을 중심으로 하는 장례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이것이 죽음을 처리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도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한국 사회는 적어도 매장 이외의 ‘다양한 죽음의 문화’가 공존하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의 장묘문화는, 주검을 매장할 것이냐 화장할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화장한 유골을 산골이나 수목장하는 방식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장묘문화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의 공간에 대한 태도이다. 한국의 도시지역에서는 죽음의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죽은 자를 기념 또는 기억하는 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묘지는 물론이고 공동묘지, 납골당도 그러하다. 화장장은 삶의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된 근본 이유는 식민지 건설을 위해 도시 외곽지역에 공동묘지와 화장장 설립을 시도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서 비롯됐다. 해방 이후에는 묘지, 납골당, 화장장 등 장묘시설을 ‘혐오시설’로 취급하여 삶의 공간에서 배척하려고만 했던 국가정책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려는 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판교 새도시 공설납골당 건설이 갑자기 백지화되었고,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이 일정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님비현상으로 인해 청주와 수원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울시의회는 종교시설 안에 납골당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안을 제출했다.
사실 죽음의 공간과 삶의 공간이 굳이 공존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더욱이 죽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시키려다 보니, 끊임없는 사회적인 갈등과 이로 인해 장묘시설의 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제부터는 화장률의 증가만이 아니라 장묘문화 전반에 변화를 시도해보자. 그러면 꼭 추석 명절이 아니더라도 조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화장을 하여 납골이나 산골, 수목장을 생각한다면 집안에 유골을 안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의 유골이라면 적어도 혐오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고인의 공간, 죽은 자의 공간을 삶의 공간에서 밀어내기보다는 삶의 공간으로 끌어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어 보자.
송현동 /건양대 예식산업학과 교수·장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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