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완상칼럼] 평화만들기, 평화지키기

등록 2006-10-23 21:46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칼럼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적십자운동을 창시한 앙리 뒤낭이었다. 그 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적십자운동은 무려 세 번씩이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는 그라민은행이 방글라데시의 극빈자를 추방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이 은행도 적십자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적십자 인도주의는 평화를 만드는 노력과 헌신으로 이런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만들기(peace-making)와 평화지키기(peace-keeping)가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평화지키기’는 힘의 논리에 서 있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은 평화의 이름으로 군비를 확장시켰다. 적보다 강력한 힘을 길러야 비로소 전쟁 억지가 가능하기에 평화가 지켜진다고 믿는다. 공포의 균형이 존중된다. 그런데 공포의 균형 속에는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악순환 논리가 숨쉬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국가자원을 칼가는 일에 소진시키게 된다. 폴 케네디의 주장대로 제국의 멸망의 길이 그렇게 해서 열리기도 한다.

이에 견주어 ‘평화만들기’는 전혀 다른 논리와 윤리에 서 있다. 우리의 힘을 남들과 나눌 때 비로소 참 평화가 온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나눔과 비움을 통해 남을 채워주려 할 때 평화는 세워진다. 우리 곁에 지극히 가난한 나라들이 있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나만이 부강을 누린다면 ‘평화만들기’는 어렵다. 힘과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와 교류협력을 할 때 비로소 선린, 상생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바로 여기에 공포의 균형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대신 상생의 균형이 지배하게 된다. 악순환은 가고 선순환은 작동하게 된다.

지금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는 엄청나다. 남이 북보다 적어도 30배 더 부유하다. 그렇기에 남북 평화를 만들어내려면, 부유한 우리가 어려운 북녘 동포와 교류협력해야 한다. 이런 나눔과 지원이 이 땅에 평화를 심어 모두가 공존공영하는 길을 열게 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 길이 닫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화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예수님도 평화를 만드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이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은행은 담보 없이 극빈층에게 대출을 해주는 과감한 정책을 지난 20년간 실시했다. 이런 프로젝트는 단순한 은행대출을 넘어 ‘평화만들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우선 놀랍게도 660만명의 극빈자들이 자립하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5%의 수혜자들이 은행빚을 갚았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제네바에서 열린 적십자연맹 관리이사회에서 은행 대표자인 이스람 박사가 특별강연을 했는데, 아프리카의 적빈(赤貧)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적십자연맹과 협력하겠다고 했다.

극빈자도 스스로 자기운명을 개척할 의지와 능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그는 강조하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오는 교육이나 훈련이 아니라 빈곤의 악순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올해 노벨평화상은 정말 적절한 인물과 기관에게 돌아간 것이다. 극빈이 있는 곳에 결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가난 추방은 ‘평화만들기’에서 아주 중요한 몫이다. 그라민은행이 상대방을 믿고 담보 없이 대출해줌으로써 힘없는 극빈층과 스스로의 힘을 나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평화만들기’의 아름다운 모범이라 하겠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이때, 남북은 물론 주변 모든 국가들은 그라민은행의 ‘평화만들기’ 실천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적십자사 총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