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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제 아이를 병들게 하는 부모 /김상종

등록 2006-11-01 19:13

객원논설위원칼럼
엔테로박터 사카자키균이 유명 회사의 유아용 분유에서 검출되었다. 사카자키균은 모든 연령층을 감염시키지만 1살 이하 어린이, 특히 생후 28일 이내의 신생아에게 위험하다. 그 중에서도 절반 가량은 체중 2킬로그램 미만의 저체중 출산아이며, 3분의 2는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이른둥이였다. 이 세균에 감염되면 수막염, 패혈증, 균혈증, 발작, 뇌낭종, 장염 등에 걸리며 치사율은 20% 이하에서 최고 50%까지 보고된 사례도 있어 유아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이번 발표는 모유를 먹이는 게 아이 건강에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정상 모유를 먹이지 못하여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내며, 차선책으로 경제적 부담은 되더라도 좀더 좋은 분유를 선택하여 왔을 수많은 엄마들을 자괴감과 함께 분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상품정보를 수집하고 제조회사 지명도를 따지는 형태의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고 적절한 사회체제를 갖추지 못하는 한 아기 건강도 보장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보건당국은 너무 무책임하다.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식약청은 “크게 걱정할 게 없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업체에 자진 회수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또한 식약청 용역조사에 참가한 전문가는 “인체 유해농도는 10만마리 이상 돼야 하는데 국내에서 검출된 정도인 100g당 0.36∼2.3마리로는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인 전문가집단의 의견은 이와 매우 다르다. ‘분유를 먹는 유아들의 사카자키균에 의한 감염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전문가회의’를 주관한 세계보건기구가 2004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식약청이 우리나라 분유에서 검출한 농도인 “100g당 3마리 이하에서도 감염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한번 먹이는 분량의 분유 속에 1마리의 사카자키균이 존재하여도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식약청의 이번 발표는 이미 1년 전 용역조사에서 확인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식약청은 실험일지도 남아있지 않은 허술한 자체 조사 뒤 문제의 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며 농림부가 발표할 때까지 10개월간 묵살하였다. 신생아 건강을 위해 조사를 시킨 결과를 10개월간 쉬쉬하다가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발표하면서도 위험성을 축소 왜곡시킨 식약청은 지난 6월 3천명의 학생들이 집단 식중독으로 고통 받았을 때도 원인을 밝히지 못해 씨제이(CJ)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들이 매번 누구를 더 염두에 두고 일하는지 이제 국민들도 깨달을 만하다.

정치인들이 새로운 ‘헤쳐 모여’에 정신 팔린 사이 끝나버린 국정감사, 관료들이 하는 뻔한 거짓말도 가려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인 출신 장관, 관료집단을 적절히 통제할 수단이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관료집단 주변에는 공생관계의 전문가들이 포진하여 이들이 어려울 때 공개적으로 나서서 보호막 구실을 해주고 있다.

결국 그 피해는 당장 아이에게 먹일 분유, 학교급식, 일상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국민들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기록했다가 선거 때 유권자로서의 선택 권리를 행사하거나, 상품 선택이라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이용하여 문제 기업을 응징할 수 있다. 집단소송이나 ‘정책실패 관료 실명공개 운동’ 동참 등 관료와 전문가와 기업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견제 방법도 가능하다. 부모가 포기한 권리가 자신의 아이를 병들게 하고 있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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