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칼럼
“(한국 외교안보팀 인선은) 충분히 심각하고 주목할 만한 문제이며, 한국 정부의 최고위급에서 전면적인 주의를 기울일 것을 기대한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말 치고는 이례적이다. 한국의 개각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압력까지 느껴진다. 이런 공개 언급은 내정간섭까지는 아닐지라도 외교 결례에 해당한다. 지난 1일 이뤄진 인사는 이런 미국의 기대에 어긋났음이 분명하다. 미국은 자신에겐 좀더 고분고분하고 북한에는 강경한 한국 외교안보팀을 바랐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김장수 국방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짜일 외교안보팀의 성격은 한마디로 ‘북핵 팀’이다. 이들과 청와대 안보실장은 매주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안보정책조정회의의 고정 멤버다. 이 회의는 올해 초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대신해 외교·안보 정책 사령부 구실을 해 왔다. 이제까지 이 회의에서 큰 역할을 한 송민순 안보실장이 외교부 장관으로 옮기고, 이종석 통일부 장관 후임으로 역시 포용정책 지지자인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임명된 게 이번 인사의 핵심이다. 기존 정책의 구심력이 더 커진 셈이다.
지금 지구촌에서 강경 기조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춰가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일본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나라는 각각 중동 및 동북아 지역에서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으며, 미국이 이들의 도움을 받아 추진해 온 이라크·북한 정책은 이미 실패로 드러났거나 한계에 부닥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까지 강경 쪽으로 돌아서길 바라는 것은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한 오기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한국과 미국의 협상파가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 쪽과 주고받기식 협상을 해나가는 길밖에 없다. 새 외교안보팀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마침 곧 6자 회담이 재개될 예정이고, 곧 치러질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강경 대외정책을 비판해 온 민주당의 약진이 예상된다. 중국도 단순한 6자 회담 주최국이 아니라 회담 과정에 적극 개입하려는 자세로 바뀌었다. 1년여 만에 조성된 협상국면이다.
우선 미국 정부에 대해서는 협상파에 힘을 실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6자 회담 재개와는 별도로 미국이 대북정책조정관이나 특사를 통해 북한과 직접 대화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하원 다수당이 유력한 민주당 쪽과도 접촉 기회를 늘려 협상파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의회와 정면에서 충돌하지 않고 부드럽게 정책 전환을 하도록 돕는 길이기도 하다. 대북 협상 이외에는 길이 없음을 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여론 조성 노력도 중요하다.
북한에는 6자 회담이라는 협상 틀에서 다시 벗어나서는 파국이 온다는 점을 확실히 경고해야 한다. 쌀·비료 등 인도적 지원의 재개를 포함한 남북관계 복원도 시급하다. 한국의 조언을 듣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북한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깊이있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은 물론이고 정상회담도 피할 이유가 없다. 남북관계 발전은 6자 회담 진전과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새 외교안보팀의 성패는 전적으로 북한 핵문제의 진전 여부에 달렸다. 국민이 안심하도록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과거처럼 부처별로 딴목소리를 내면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앞으로 한두 해에 나라의 장래가 달려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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