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전쟁으로 만들어진 국가>. 미국 명문 하바드대 출신의 법학자 제프리 페렛이 1990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독립전쟁 이후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주도해온 전쟁의 역사를 조명한 그는 미국은 전쟁을 통해 제국을 향한 팽창의 기회를 거듭 확보해왔음에 주목했다.
2002년 <아메리카 제국>을 출간한 보스턴대학의 앤드루 바세비치는 최근, <새로운 미국의 군사주의>라는 저작을 통해 미국 전체가 얼마나 전쟁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분석해냈다. 이보다 훨씬 앞서 1925년에 스콧 니어링은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한 연구>라는 책에서, 그리고 반전운동 세대인 시드니 렌스는 1971년 “아메리카 제국의 기초는 전쟁”이라며 각기 미국의 전쟁사를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미국의 역사가 하워드 진도 전쟁과 미국의 정치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입증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정벌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미국의 힘은 1776년 영국과의 투쟁에서 전쟁 시스템의 기초를 다졌다. 이는 이후 텍사스를 합병하기 위해 벌인 1847년의 멕시코전쟁, 1860년대의 남북 내전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전쟁 체제와 맞닿게 된다. 1898년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화한 미국-스페인전쟁은 남북 내전을 경험한 세대가 주도했고, 이 전쟁은 20세기 초반 ‘함포외교’의 기초역량으로 기능했다.
함포외교는 본질상 ‘정복전쟁’이었다. 1907년 미국은 산토 도밍고를 침략한 뒤 이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다시 1916년에 병력을 투입해 점령체제를 확립했다. 1914년 미국은 아이티에 군대를 파견하여 식민지화했고, 이보다 앞선 1910년에는 니카라과를 동일한 방법으로 정복했다.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카리브해는 미국이 주도하는 크고작은 정복전쟁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이 시기의 주요 지휘관 세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주도했고, 이어 베트남전쟁 경험 세대는 오늘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중동전쟁의 주역이 된다. 이외에도 미국이 벌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전쟁들은 무수하게 터졌다. 역사는 그것을 ‘더러운 전쟁’이라고 부른다.
1947년 미국은 그리스 내전에 개입했다. 1945년에서 5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필리핀 농민군 진압을 위해 병력을 투입했고, 1953년의 이란과 1954년의 과테말라는 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비밀공작으로 정권교체를 겪었다. 1959년 쿠바혁명은 미국의 개입전쟁으로 좌절될 위기에 처했으며, 1970년대에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1980년대와 90년대에 그레나다와 파나마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차례차례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모두 전쟁이었다.
조지 부시 정권은 바로 이 전쟁체제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국의 권력’이다. 제국은 전쟁으로 자신을 실현시킨다. 평화는 제국의 적이 되고 있다. 제국은 평화의 적이 되고 있다. 김민웅/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minwkim@at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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