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민간 보험시장이 대단히 발달한 나라다. 민간 생명보험의 보험료 수입을 기준으로 하면 세계 7위 규모이며, 국민총생산에서 민간 생명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4위라는 ‘높은 위상’을 갖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질병이나 노후 보장을 위해 민간 생명보험에 가입한 가구가 88%에 가구당 가입건수도 3.3건에 이르고, 월평균 보험료로 가구당 약 28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월 28만원은 웬만한 서민층이 공공보험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의 보험료로 지출하는 돈보다 더 큰 액수이다.
민간보험이 이렇게 팽창된 상태에서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국민연금의 확대는 사회보험과 민간보험의 충돌을 야기한다. 여기서 두 부문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이 문제를 세계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업원의 의료문제와 퇴직연금을 민간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의료비와 연금 부담 때문에 아우성을 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민간 의료보험이 법정본인부담금을 보장하지 못하도록 한 결정은 의료비 팽창과 기업 경쟁력 확보라는 관계에서 볼 때 의미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 한 사회의 경제 수준을 과도하게 넘어선 의료비의 팽창은 임금과 노동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에 압박을 주게 된다. 민영보험이 법정본인부담을 보장하여 병의원의 접근도가 낮아지면 건강보험의 의료비 팽창에 일조할 것이라는 점은 정도의 문제이지 인과관계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민간 의료보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적절히 분담되지 않는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의 ‘과도한 팽창’이 기업과 사회 전체에 가져올 부담에 유의하자는 것이다. 법정본인부담금을 민간보험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암 등 고액 중증질환에서 민간보험이 활성화될 영역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즉, 현행 공보험의 틀 안에서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이 상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의료보험처럼 공개적 충돌은 없었지만 국민연금과 민간연금도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를 유지해 왔다. 필자가 만나 본 대다수의 민간보험 판매자들은 개인연금의 수익률이 국민연금보다 더 높다고 강변하거나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는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상생의 가능성이 없다. 국민연금은 노후를 ‘풍족하게’ 보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에 민간 보험업계가 연금시장에서 활동할 공간은 충분하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보장 수준이 낮으면 퇴직연금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기업으로서는 종업원들의 연금 보험료를 공단에 납부하느냐 보험회사에 납부하느냐의 차이이지 본질적 차이는 없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민간보험보다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가 적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축소시키면 시켰지 늘리지는 않는다.
기업들은 해마다 사회보험료 상승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대안 없는’ 불만을 제기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민영보험의 역할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기 어렵다. 하지만 민영보험이 더욱 커진다고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보장은 없다. 적절한 수준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제구실을 하고, 민간보험이 두 사회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보충적 역할을 담당해야 기업도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커지게 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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