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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전태일 정신을 아십니까? / 하종강

등록 2006-11-13 17:52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객원논설위원칼럼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민주노총)이 여는 노동자 대회가 매년 5월과 11월에 두 차례 열린다.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이 대회에는 다른 나라 노동 운동가들이 ‘견학’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노동자 권리’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수만 노동자들이 모여서 일사불란하게 열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장관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경외심으로 자세와 눈빛이 달라지지만, 조금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한국 노동운동 분위기가 이렇게 전체주의적입니까? 이런 건 히틀러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전근대적인 모습이 아닙니까?”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단 위에 올랐을 때 수만 노동자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모습이 그 외국인 활동가의 눈에는 후진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자 한국 노동운동을 잘 이해하고 있는 한 외국인 활동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이 전태일 정신을 압니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계속 죽음으로써 전통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압니까? 그걸 모르면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처럼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죽음으로써 전통을 이어가는 뼈아픈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진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없다. 한 가지만 묻자. 그 이유가 ‘경솔하게’ 자신의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 탓인가?

며칠 전, 정부 출연기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그날은 그 기관의 노동조합이 271일째 파업 중인 날이기도 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 관료가 그 기관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내부 비리를 고발한 노조간부들을 해고하라고 지시하는 등 정부 관료와 기관장들의 불법적인 노조 탄압, 법인카드의 부적절한 사용, 여성 조합원 폭행과 성희롱 발언, 행정소송비용 낭비, 파업 유도 행위 등 파행 경영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장시간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노동조합 간부는 “신랑 신부의 부모님들이 아직 파업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주례사를 하면서 행여 그 일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한 가지만 묻자. 파업을 271일이나 하면서도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 이유가 그 파업이 정당하지 못한 탓인가?

며칠 전, 대학 수업에 한국고속철도(KTX) 승무원들이 참석했다. 승무원들의 파업이 256일째 이어지는 날이었다. 한 학생이 “지금이라도 다른 직장을 찾아가지 않고 계속 싸우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한 승무원은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며 목이 잠긴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저 한 사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후배들, 이 땅의 8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다음 세상에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은 또다시 우리처럼 불행한 일들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두 시간이 넘는 대학생들과의 대화가 끝날 무렵, 한 승무원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봤어요. 전태일 열사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11월13일을 맞아,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억압구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전태일 정신을 아십니까?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며 쌓아올린 한국 노동운동의 뼈아픈 역사를 아십니까?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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