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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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역사책보다 때로는 개인의 비망록이나 회고록, 자서전이 지나간 시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긴박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기록은 역사 퍼즐을 맞추는 핵심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목격자들은 이 조각을 채울 의무가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작고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생전에 아무런 증언을 하지 않은 점이 비판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남재희(72) 전 의원이 최근 <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민음사)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언론인 출신으로 유신 말기인 1979년 공화당에 입당한 이후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보고 겪은 일들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5공 시절 신군부가 밀어붙였던 학원안정법을 반대하고,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있던 때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제동을 건 일 등 집권세력 내 소신파로서의 행적이 잘 드러난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이런 그를 가리켜 “의식은 야에 있으나 현실은 여에 있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 스스로는 “‘외로운 늑대’(이방인)였다”고 말한다.
이 비망록의 진가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반성한 점에 있다. 그는 “준군사 통치세력과 그 반대 세력, 유신 세력과 반유신 세력이 대치하고 있을 때 명색이 지식인이라고 사회의 평가를 받고 있는 나로서는 의당 반유신 세력에 가담했어야 옳았다”며 공화당 참여를 반성한 뒤, “그러지 못하였으니 공격을 받아도 할 말이 목 속으로 기어든다”고 밝혔다. “욱하는 객기는 있었으나 참다운 용기는 없는” 탓이라고 진단했으나, 진실된 고백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발로다. 그래서 “(현시점에서는) 우선 진보 정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그의 주장도 진실해 보인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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