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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아스팔트의 정치학 / 한상희

등록 2006-11-16 17:34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세상읽기
“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자가 국가도 정복한다.” 나치 독일의 괴벨스는 정치의 동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한갓 행인에 불과하던 사람들은 선전가의 언어를 통해 대중으로 변신하고 그 거리는 행동하는 자의 활기찬 공간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정치가 살아 있는 국가에서 거리는 차도와 인도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것은 광장이자 포럼이자 카니발의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세 명의 집회자가 희생되어야 했던 우리의 현실은 이런 당위를 거부한다. 거리는 교통의 통로로서만 존재해야 하며, 행인의 눈과 귀를 향해야 할 정치적 주장과 구호들은 80데시벨(㏈)의 소음으로 규제대상이 되어 버린다. 군중의 집회는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것이며, 대중의 행진은 도심혼잡의 소란 정도로 치환되어 버린다. 주장자와 방어자 사이의 선전과 투쟁은 간곳없고, 그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오로지 집회자와 진압경찰의 힘싸움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탈정치의 전략은, 뜬금없는 질서론으로 최근의 집회들에 딴죽 거는 일부 보도 행태들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등 첨예한 정치문제를 앞에 두고도 이들의 목소리는 교통체증론으로 일관한다. 가치와 정의의 문제가 불편과 귀찮음의 문제로 변질되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과 권력의 대립관계는 ‘폭력적인 집회자’와 ‘선량한 일반시민’의 대립문제로 호도되어 버린다.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의 실체는 그대로 은폐·엄폐된 채 질서와 규제의 문제만이 부유하게 되는 셈이다.

경찰은 경찰대로 그 대리역에 충실하다. ‘정치적 중립’을 외치는 경찰은 과거의 정치경찰이라는 질곡은 떨쳐버린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이 내세우는 ‘평화적 집회’, ‘시위질서’의 개념은 여전히 편향된 담론정치에 빠져 있다. 집회로부터 질서를 보전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임은 분명하다. 하나 질서를 빌미로 집회를 불허하며 교통을 이유로 행진을 차단하는 무리수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약자의 정치공간인 거리를 권력의 손에 넘겨주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터잡는 최우선적 인권이다. 그것이 있어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각성되며 이를 통해 참여사회가 올바르게 구동된다. 요컨대 집회의 자유는 자기 지배에 입각한 공화정치의 본질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교통불편이나 혼잡은 집회를 위하여 의당히 인내되고 관용되어야 하는 민주시민의 의무사항이 된다.

그러나 1962년 군사정권과 함께 등장한 집시법은 지금도 정반대로 나아간다. 그것은 집회를 질서와 대립되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규정하면서 사실상의 허가제를 취하는 한편, 집회를 불법화하고 단속할 수 있는 엄청난 재량권을 경찰에 부여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라는 숭고한 인권이 한갓 교통편의의 하위가치로 전도되고, 질서유지라는 명분에 치여 진압과 통제의 대상으로 선전되고 있는 질곡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거리는 차도와 인도에 점령당해 버린다.

평화는 자유와 공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집회는 애당초 자유를 박탈당한 채 금기의 대상이 되어 왔다. ‘평화적 집회’라는 말이 논리모순의 말장난에 불과함은 이 때문이다. 이에 집시법의 폐지는 아직도 여전히 민주화를 향한 최우선적 과제가 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명실상부한 시민의 기본권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통해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가 가능하게 될 때, 그때에야 비로소 자동차와 전투화에 빼앗긴 우리의 거리를 되찾게 될 것이며 그 거리가 정치로 활성화된 우리의 광장으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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